"한곳 사고 났다고 조선소 전체 멈춰…2500명이 2주 일당 날렸다"

입력 2022-08-17 17:39   수정 2022-08-25 15:41

경남 거제 한 대형조선소 사내 협력업체 A사는 최근 다른 도크 선박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사고로 고용노동부가 2주간 전체 조선소에 대한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공정이 연기돼 수억원의 손실을 봤다. 이 조선소 전체로는 250개 협력사가 250억원의 손실을 보고, 현장 근로자 2500여 명도 2주간 일손을 놔야 했다. A사 대표는 “여의도만 한 크기의 조선소 안에 축구장 6~8개를 합쳐 놓은 크기의 도크만 7~8개이고 도크당 간격이 수㎞ 떨어져 있다”며 “왜 같은 조선소라는 이유만으로 사고 한 번에 전체 근로자가 손해를 봐야 하냐”고 하소연했다.
“中企 발목 잡는 규제 여전”
1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선 환경·노동·인증·검사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각종 규제에 대한 중소기업계의 애로가 쏟아졌다. 중소기업 대표들의 호소가 길어지면서 이날 행사는 1시간가량 연장됐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오찬 일정까지 취소하고 환경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에 개선을 지시했다.

핀포인트 규제가 아니라 무차별적 규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중대재해 발생 시 지나치게 넓은 고용부의 작업중지명령 범위에 대한 지적이 대표적이었다. 삼성중공업 사내 협력사인 성해산업의 박재성 대표는 “한 군데에서 사고가 나면 도크 전체를 작업 중지시키는 것도 모자라 회사 전체 작업을 중지시킨다”며 “이런 조치는 사고 예방 목적이 아니라 기업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손보기식’ 징벌적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고용부의 작업중지명령으로 사고와 관련 없는 사업장 내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해 생계마저 위협받는 처지라는 호소였다.

최근 폭우 피해로 일감이 폭증한 아스콘업계는 환경부가 아무도 지킬 수 없는 규제를 내놔 업계 전체가 불법 업체로 전락했다고 하소연했다. 도로 아스팔트 포장과 보수에 주로 쓰이는 아스콘은 국내 500개 업체 중 70%인 350개가 도심지 인근(계획관리지역)에 분포해 있다.

환경부는 2020년 7월 아스콘업계의 특정대기유해물질 8종에 대한 추가 배출 규제를 시행했다. 이 규제로 계획관리지역 내 업체는 사실상 모두 불법 업체가 됐다. 서상연 서울경인아스콘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업계가 수백억원을 투입해 개발하려고 했지만 규제를 맞추기 위한 기술 구현이 어렵다”고 우려했다.
15일에서 2개월로 늘어난 크레인 검사
타워크레인업계는 잦은 검사 주기(6개월)를 1년으로 완화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사가 너무 잦아지는 바람에 검사 소요 시간이 길어져 중대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상길 한국타워크레인임대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과거엔 검사하는 데 15일 걸렸는데, 최근엔 2개월이 걸린다”며 “검사 일정에 따라 모든 타워크레인 공정을 한꺼번에 맞추려다 보니 오히려 중대 사고가 더 잦아졌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이에 대해 “타워크레인 규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며 “인증도 별 차이가 없으면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포에서 수도꼭지, 샤워기를 제조하는 대정워터스의 김명희 대표는 이날 KS·KC·환경표지인증 사례를 들며 “중복되는 인증제도를 과감하게 통폐합해달라”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7월부터 시행한 2등급 의료기기에 대한 공급내역 보고제도도 도마에 올랐다. 국내 6만9000여 개 의료기기업체 중 5인 미만 사업체가 80%인 6만2000여 개에 달해 정부에 보고할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에 대해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규제 대응 역량이 낮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할 통로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장의 애로를 전달하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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