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복수의 독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독일이 마지막으로 남은 원전 3기의 폐쇄를 연기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해체 예정일인 오는 12월 31일을 지나서도 수개월간 계속 가동할 것이란 관측이다. 독일 정부는 이번 원전 수명 연장안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은 상태다. 독일 의회의 표결 절차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고 WSJ는 전했다.
독일은 탈원전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의 여진이 이어지던 2000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탈원전 화두를 꺼내들었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탈원전 정책을 가속화했다. 올해 말까지 독일에 남아 있는 원전을 모두 폐쇄하겠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사진)는 이달 초 원전 3기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탈원전을 고수하던 독일의 기류가 달라진 것은 러시아가 촉발한 에너지 대란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국가들의 경제 제재를 받게 된 러시아는 독일로 향하던 천연가스 공급을 대폭 축소했다.
가스값이 치솟고 안정적인 전력 생산마저 위협받자 독일이 원전 수명을 일시적으로나마 연장하는 방향으로 기운 것이란 분석이다. WSJ는 “독일은 가스 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고 원전 수명을 연장해도 안전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정부가 실제로 원전 수명을 연장하면 ‘탈원전 정책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독일의 정치적 금기가 깨지게 된다. 탈원전 정책은 독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녹색당의 정체성 그 자체다. 원전 수명 연장 논의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러시아산 가스에 크게 의존해온 독일의 정치를 얼마나 뒤흔들어 놨는지 보여준다고 WSJ는 분석했다.
원전 수명을 늘리는 것이 에너지 대란을 해결하는 만능키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이 난방과 전력 생산에 사용하는 주된 에너지원은 천연가스기 때문이다. 수명을 연장하는 원전 3기의 전력 생산량은 전체의 6%에 불과하다.
독일 정부는 이번 보도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독일 경제부 대변인은 “원전 3기의 수명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며 “연장 여부는 독일의 전력 수요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 결과에 달려 있다”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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