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은 모두발언 시작부터 ‘국민’을 연신 언급하며 총 20차례나 이 말을 썼다. “취임 100일을 맞은 지금도 ‘시작도 국민, 방향도 국민, 목표도 국민’이라고 하는 것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며 “그동안 국민 여러분의 응원도 있었고 따끔한 질책도 있었다. 국민들께서 걱정하시지 않도록 늘 국민의 뜻을 최선을 다해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했다. 지난 5월 10일 취임사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가 화두였다면 어제 회견에서 제기한 화두는 ‘국민’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힘주며 외치는 ‘국민’ 중 상당수가 취임 전의 기대를 버리고 실망감을 표시하는 게 현실이다. 지지율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지만, 집권 초기에 20~30%대 지지율은 국정의 동력 유지 차원에서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인사 논란 등 여러 요인이 거론되고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뚜렷한 국정철학과 비전을 국민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 적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분야는 외교·안보다. 문재인 정부 때 큰 위기를 맞았던 한·미 동맹의 굳건한 복원과 북핵 억제력 확대, 상호주의적 대중(對中) 관계 등의 분명한 원칙에 입각한 행보가 국민 신뢰를 얻은 결과로 보인다. 반대로 기업, 노동, 교육 등 다른 국정 분야에선 불필요한 혼선에 일부 모순적 정책까지 내보였다. ‘자유’를 기치로 내건 정부에서 시장경제의 핵심 원리인 사적 자치 원칙에 맞지 않는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거나, 노동 개혁을 내세우면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고수하는 게 그렇다.
이런 정책에 국민은 혼란을 느낄 수 있다. 상식·관행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사와 새롭게 시도한 소통 스타일이 일부 혼선을 빚으면서 민심이 싸늘해진 것은 아닌가. 국정의 비전과 철학 및 방향성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판에 대통령실 일부 참모를 교체한다고 문제가 풀린다고 보기 어렵다. 대통령이 국정철학과 비전을 주변 참모 및 각 부처와 얼마나 제대로 공유하고 있으며, 나아가 일선 공무원과 국민에게 얼마나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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