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소리만 요란했던 270만가구 주택 공급 대책

입력 2022-08-17 17:27   수정 2022-08-18 00:21

“요란했는데, 예상대로 알맹이는 별로 없네요.”

지난 16일 정부가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 실현 방안’을 두고 한 건설사 최고경영자(CEO)가 기자에게 남긴 촌평이다. 서울 50만 가구를 비롯해 전국에 27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그는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을 녹이고 실수요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엔 구체성이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에 앞서 지난 정부와 차별화된 수요 맞춤형 부동산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올 5월 취임식 때부터 “임기 내 부동산 정책의 청사진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해왔다.

이번 대책은 지난 정부와 주택 공급의 방향성에선 확실히 달라졌다. 공공이 아니라 민간을 공급 주체로 내세웠고, 수요가 덜한 수도권 외곽이 아니라 서울 도심·역세권에 대규모 물량을 풀기로 했다.

문제는 물량에만 집중하다가 정책의 구체성을 놓친 데 있다. 공급 주체로 나서야 할 건설사, 무주택자 등 수요자와 부동산 전문가 등 주요 시장 참여자들의 반응이 시큰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토부는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나 안전진단 규제 완화에 대한 각론은 뒤로 미뤘다. 신규 택지 발굴도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하겠다는 선언적인 수준에 그쳤다. 1기 신도시 마스터 플랜(기본계획)은 후순위로 밀려 2024년 수립하기로 했다. 정부가 강조한 도심 주택 공급은 대규모 이주에 따른 전월세난 등 변수가 많지만 이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계획대로 5년간 수도권에만 158만 가구를 공급하려면 연간 31만6000가구를 내놔야 하는데, 택지 발굴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 개정·예산 확보까지 감안하면 과연 정부 임기 내 얼마만큼 진행될지 미지수”라는 게 정비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장의 투기심리를 자극해 집값 상승세가 재현될까봐 조심스러운 국토부의 고민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시장의 불안정성을 이유로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을 자꾸 미룬다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결국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민간 공급의 키를 쥐고 있는 건설사들의 경영 여건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조달 비용이 치솟고 있는 데다 원자재값과 인건비는 빠르게 급등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잡아놓은 분양 일정마저 미루는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체적인 실행안이 확정되지 않으면 정부의 목표대로 민간을 통한 대규모 주택 공급은 요원해질 수 있다. ‘앙꼬’ 없는 보여주기식 대책으론 집값 잡기에 실패한 지난 정부의 전철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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