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빗나갔다. 2020년 기준으로 바이오칩·센서 기술 수준은 중국과 똑같고 감염병 대응 기술은 한국이 오히려 1년 뒤져 있다. 중국은 파격적인 연구지원과 함께 과감한 바이오 규제개혁을 통해 대규모 임상 데이터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생명윤리법 등에 가로막혀 임상 연구도 쉽지 않다.
한국경제신문이 18일 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기술 수준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국내 첨단산업 기술력이 최근 10년 새 중국에 대거 역전을 허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계 제조 등 제조업 기반 기술은 여전히 중국에 앞서 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첨단기술에선 중국이 한국을 앞섰다는 평가다.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비해 강점을 보인 것으로 여겨졌던 바이오·ICT(정보통신기술)에서도 중국에 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선 줄기세포 기술은 2010년 한국이 중국에 2.5년 앞서 있었지만, 2020년엔 1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2.7년 앞섰던 신약 개발 기술도 마찬가지다. 2020년 기준으로 중국보다 1년가량 뒤에 있다.
중국은 2010년대 중반부터 바이오의약품, 고성능 의료기기 등 신산업 분야 기술을 세계 최고로 육성하기 위한 ‘2025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우수한 연구자를 모아 파격적인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며 “한국과 달리 바이오 규제 완화에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말했다.
‘IT 코리아’도 옛말이 됐다. 한국은 ICT 분야에서도 중국에 뒤처졌다. 이 기간 차세대 네트워크(2.7년→-0.5년), 이동통신(2.3년→-2.5년), 차세대 시스템 SW(2.0년→-1.0년) 등의 분야가 중국에 역전을 허용했다.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 기술도 중국에 1년씩 뒤처졌다.
IT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 등 규제에 가로막혀 발전이 더뎠던 데 비해 중국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규제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렸다”고 지적했다.
2010년에도 중국이 강점을 보였던 우주항공 기술은 한국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우주발사체와 우주탐사 기술은 중국이 한국에 각각 10년과 8.2년 앞서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에 공개되는 ‘2022 기술 수준’에선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 보유한 인력자원 규모에서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중국 정부의 기초과학 투자 규모도 한국에 비해 월등히 크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중국과의 기술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을 지낸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는 “정부가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컨트롤타워로 핵심 전략 기술을 국가 미션으로 정의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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