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SW), 바이오·의료, 에너지 등 국내 주력 산업의 기술 경쟁력이 미국 일본뿐 아니라 중국에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고 기술 수준을 보유했다고 평가받는 반도체와 원자력 발전도 중국과 격차가 거의 없었다. 값싼 노동력을 앞세워 ‘짝퉁’을 생산한다는 비아냥을 듣던 중국이 첨단 기술을 앞세워 한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한국경제신문이 한·중 수교 30주년(24일)을 앞두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기술 수준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10년 중국에 평균 3년 앞섰던 한국의 기술 수준이 2020년엔 0.1년 뒤졌다. 조사 대상 11개 부문 중 국방을 제외한 △건설·교통 △재난·안전 △우주·항공 △기계·제조 △소재·나노 △농림수산·식품 △바이오·의료 △에너지·자원 △환경·기상 △정보통신기술(ICT)·SW 등 10개 부문을 분석한 결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주요 국가별 기술 수준을 2년에 한 번 들여다보고 있다. 전문가 1200여 명의 정성평가와 논문·특허 등 정량평가를 함께 분석하고 있다.
한국은 2010년 우주·항공(-0.1년)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앞섰다. 하지만 2020년엔 우주·항공(-3.5년) 의료(-0.1년) 에너지·자원(-0.2년) ICT·SW(-0.3년) 등 4개 분야에서 뒤졌다. ‘IT 강국’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이동통신, 시스템 SW, 인공지능(AI), 가상현실 등 차세대 기술에서도 중국에 주도권을 내줬다는 점이 눈에 띈다. 나머지 분야도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평균 반년가량에 불과했다.
2010년대 중반 국내에선 기술 경쟁력이 앞선 미국·일본과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중국 사이에 놓인 ‘너트크래커’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과도 기술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 됐다.
이정동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는 “한국과 중국은 선진국을 따라가는 추격형 발전 전략을 고수해 왔다”며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해 선도형 발전모델로 전환해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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