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비핵화 로드맵 '담대한 구상'에 대해 "어리석음의 극치"라며 강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윤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거론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면서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이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허망한 꿈을 꾸지 말라'는 제목의 담화를 내고 "앞으로 또 무슨 요란한 구상을 해가지고 문을 두드리겠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했다.
김 부부장은 "(담대한 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10여 년 전 이명박 역도가 내들었다가 세인의 주목은커녕 동족 대결의 산물로 버림받은 ‘비핵, 개방, 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며 "역사의 오물통에 처박힌 대북정책을 옮겨 베끼고 '담대하다'는 표현까지 붙인 것은 바보스럽다"고 했다.
김 부부장은 "윤석열의 담대한 구상이라는 것은 검푸른 대양을 말려 뽕밭을 만들어보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며 "북이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면'이라는 가정부터가 잘못된 전제라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부부장은 "세상에는 흥정할 것이 따로 있는 법,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 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 윤석열의 푸르청청한 꿈이고 희망이고 구상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천진스럽고 아직은 어리기는 어리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가장 역스러운 것은 우리더러 격에 맞지도 않고 주제넘게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무슨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과감하고 포괄적인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다는 황당무계한 말을 줄줄 읽어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내에 아직도 더러운 오물들을 계속 들여보내며 우리의 안전 환경을 엄중히 침해하는 악한들이 북 주민들에 대한 식량 공급과 의료지원 따위를 줴쳐대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민의 격렬한 증오와 분격을 더욱 무섭게 폭발시킬 뿐"이라고 했다. 김 부부장이 언급한 '더러운 오물'은 남측에서 살포된 대북 전단 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은 윤 대통령의 실명을 직함 없이 거론하면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김 부부장은 "남조선 당국의 대북정책을 평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면서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했다.
또한 "정녕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인물이 저 윤 아무개밖에 없었는가"라며 "소위 대통령이라는 자가 나서서 한다는 마디마디의 그 엉망 같은 말들을 듣고 앉아있자니 참으로 그쪽 동네 세상이 신기해 보일 따름"이라고도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에 대한 '담대한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할 시 단계별로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담대한 구상의 세부 방안은 △대규모 식량 공급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 현대화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병원과 의료 인프라 현대화 △국제 투자 및 금융 지원 등이다. 윤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지속 가능한 평화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북 통일 정책의 목표는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구현하는 것"이라며 "담대한 구상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진전에 맞춰 북한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김 차장은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나올 경우, 초기 협상 과정에서부터 경제 지원 조치를 적극적으로 강구한다는 점에서 과감한 제안"이라며 "여기에는 광물, 모래, 희토류와 같은 북한의 지하자원과 연계한 일명 한반도 자원 식량 교환 프로그램이라든지, 보건·의료·식수·위생·산림 분야 민생 개선 시범사업 등이 포함된다"고 했다.
김 차장은 "포괄적 합의가 도출될 경우 (핵의) 동결·신고·사찰·폐기로 나아가는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해 남북경제협력을 본격화하기 위한 '남북공동경제발전위원회'를 설립해 가동할 것"이라며 "북한 당국과 함께 비핵화 방안과 남북공동경제발전 계획을 구체화해 나가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유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30년간 여러 차례 비핵화 방안이 시도됐고 몇 차례 합의도 도출됐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며 "북한의 호응을 고대한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구체적인 논의에 착수할 경우 북한의 비핵화와 필요로 하는 경제발전 방안에 대해 초점을 두고 핵심포인트를 제안한 것"이라며 "북한의 호응이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식량 지원 방안은 민생 개선 시범사업, 보건·의료·식수·위생 지원과 함께 비핵화 방안을 논의하는 협상 초기 단계에서 아무 조건 없이 먼저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필요에 따라서는 지금 진행 중인 유엔 제재 결의안에 대한 부분적 면제도 국제사회와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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