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대치와 초고속 성장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이 낳은 주거 형태인 반지하는 사라질 수 있을까. 서울시가 침수 피해 우려가 큰 지하·반지하를 주거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안전 대책을 지난 10일 발표했다. 새로 짓는 집엔 전면 금지하고, 이미 사람이 사는 곳엔 기존 세입자의 거주만 허용하는 방식으로 10~20년에 걸쳐 없앤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지하·반지하 주택은 32만7320가구로, 61.4%(20만849가구)가 서울에 몰려 있다.
1962년 제정된 건축법은 1970년 개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지하층을 건설하도록 했다. 만에 하나 전쟁이 나면 ‘벙커’로 쓸 목적이었다는 게 건축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곳을 거주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건 1975년 건축법이 다시 개정되면서다. 당시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56.3%. 턱없이 부족한 주택을 확충하는 보조 수단으로 반지하를 동원한 것이다. 1980년대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합법화되면서 반지하에 독립된 가구가 사는 거주 형태가 일반화됐다.
반지하 주택이 서울에 집중된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주거비다. 국토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수도권 저층주거지 지하주거 임차가구의 평균 소득은 182만원으로 아파트 임차가구(351만원)의 절반에 그쳤다. 저소득층(74.7%)과 비정규직(52.9%)이 많고, 노년 가구주(19.2%)와 자녀양육 가구(22.1%) 비중도 다른 주거 형태보다 높았다. 반지하는 내부 환경은 불편하지만 도심과 가깝고 교통 등의 여건은 좋은 경우가 많다. 결국 반지하만큼 값이 싸면서 입지도 괜찮은 거처가 있어야 세입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올 유인이 생긴다는 분석이다.
현재 서울 시내 공공임대주택은 24만 호 정도다. 하지만 반지하 가구 지원에 매달리다 보면 다른 취약계층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반지하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고려하면 이를 퇴출하는 방향의 정책이 맞다”면서도 “공공은 공공대로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민간은 민간대로 고밀도 개발을 통해 안전하면서도 싼 주택을 최대한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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