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패션은 2000년대 초반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스타일이다. 바닥에 질질 끌리는 바지와 박시한(품이 큰) 티셔츠, 푹 눌러 쓰는 힙합 모자가 대표적인 아이템들이다. 요즘 1020세대의 부모들이 즐겨 입던 길거리 패션은 자유롭고 독창적 디자인을 중시하는 젊은 층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무신사 이용자의 67%는 10~20대다.
길거리 패션의 거센 공세에 삼성물산 ‘빈폴’, LF ‘헤지스’ 등 기성 캐주얼복 시장은 쪼그라들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빈폴의 시장 점유율은 2017~2019년 2.5%를 유지하다가 2020년 2.4%로 하락한 뒤 지난해에는 2.3%까지 떨어졌다.
‘큰손’ 투자자들도 뭉칫돈을 넣어 패션 벤처의 성장을 돕고 있다. ‘은둔의 K패션 제왕’으로 통하는 권오일 회장의 대명화학이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대명화학이 투자한 패션기업은 27개사, 200개 브랜드에 달한다. ‘마뗑킴’ ‘코닥’ ‘키르시’ 등 길거리 브랜드가 상당수다. 대명화학이 2020년 투자한 패션 플랫폼 하고엘앤에프는 14개사, 27개 브랜드에 투자하면서 ‘패션 벤처 인큐베이터’를 자처하고 있다.
이는 주력 소비층이 1020세대인 것과도 연관이 깊다. 정대권 코드그라피 이사는 “요즘 어린 세대는 자기가 입는 옷이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기를 다른 세대보다 더 바란다”며 “디자인이 특별하면 브랜드는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브랜드가 이들을 잡기 위해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을 택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요 브랜드 최고경영자(CEO)들이 서울 동대문에서 사업을 시작해 동대문식 초고속 생산 시스템을 익힌 데다 SNS를 활용한 마케팅에 능숙한 점이 이를 가능케 한 것으로 분석된다.
마땡킴이 인스타그램에 발매 정보를 올리고, 팔릴 때마다 50개, 100개씩 공장에 추가 주문·생산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다인 마땡킴 대표는 “인스타그램을 이용한 판매는 작은 브랜드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널디’의 경우 해외 쇼핑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F&F의 패션 브랜드 ‘MLB’에 이어 면세점 시장에서 2위로 발돋움했다. 2019년 도쿄 하라주쿠에 첫 매장을 낸 뒤 올해는 일본 백화점 3곳에 추가로 매장을 내면서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길거리 브랜드의 급성장은 무신사가 주도하는 패션 플랫폼 업계 판도에도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e커머스가 키운 브랜드들이 역으로 플랫폼 시장을 흔드는 것이다.
2018년 첫선을 보인 패션 플랫폼 ‘하이버’는 희소한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입점시키는 전략으로 로열티 높은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한 패션회사 대표는 “루이비통 같은 명품업체도 K 길거리 브랜드에 협업을 구애하는 시대”라며 “길거리 패션은 지속 성장이 가능한 산업으로 성장 중”이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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