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금리를 높여 시중에 흘러넘치는 유동성을 흡수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올해 들어 잇달아 금리 인상에 나선 이유다. 하지만 튀르키예는 이번에도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고금리가 고물가를 부채질한다’고 믿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고금리는 만악의 어머니”라며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압박에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네 차례 연속 금리를 내렸다. 그의 뜻을 따르지 않은 중앙은행 총재 세 명은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물가 안정보다 경제 성장을 우선시한다. 금리 인하로 리라화가 약세를 띠면 튀르키예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고, 내년 6월로 예정된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고 믿고 있다. 그는 총리직을 포함해 19년째 집권하고 있다.
문제는 금리 인하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리라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물가가 상승해 물가가 전반적으로 더 오를 수 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올가을께 물가상승률이 85%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티머시 애시 블루베이자산운용 신흥시장 전략가는 튀르키예의 금리 인하에 대해 “바보 같은 행보”라고 비판했다.
헨리크 굴버그 코엑스파트너스 거시전략가는 “인플레이션율이 수십 년 만에 최고치인데 나홀로 금리를 내리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튀르키예는 리라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계속 개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 들어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는 25% 가까이 하락했다. 세계에서 낙폭이 가장 큰 5대 통화 중 하나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