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혈세가 재원인 특고 재난지원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득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고소득자 등 부적절한 대상에게 반복 지급되는 등 낭비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2020년 9월 특고 근로자 사이에선 2차 특고 재난지원금 신청 열풍이 불었다. 1차 재난지원금 지원 당시 소득 기준이 7000만원 이하로 생각보다 후했기 때문이다. 2차 지원부턴 이 기준을 5000만원 이하로 낮췄다. 김씨와 같이 연 1억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사람에게도 재난지원금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을 감안한 조처다.
문제는 2차 지원에서부터 고소득자가 걸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 기준을 5000만원으로 바꿔 놓고도, 이보다 많이 버는 이들에게 지속해서 지원금을 지급한 것이다. 5차 지원에 이르러서야 캐디, 보험설계사, 택배기사 등 일부 직종이 제외됐지만, 이들 가운데 1~4차 지원을 받은 ‘기수급자’는 6차에서도 지원금을 타갈 수 있게 ‘배려’까지 해줬다. 상당수 수혜자가 2·3·4·5차 각 50만원, 6차 200만원(총 400만원) 지원금을 아무런 심사 없이 받아간 배경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난지원금이라는 것은 소득이 적은 사람, 더 피해를 본 사람을 위주로 지원해야 세금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며 “스스로 세운 기준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잘못된 처사”라고 지적했다.
지급 기준이 오락가락하면서 특고 근로자 사이에선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1차 지원금 당시 소득 기준은 ‘과세 대상금액’이었다. 프리랜서의 과세대상 금액은 약 40% 수준만 잡히기 때문에 연봉 1억원을 훨씬 웃도는 사람도 지원금을 수령할 수 있었다. 하지만 2차부터는 일정 금액 소득이 넘는 사람에겐 총소득으로 잡히기 시작했고, 3차부터는 일괄적으로 총소득이 기준이 됐다.
총소득 5000만원이 조금 넘는 미용 프리랜서 이모씨(36)는 “나보다 갑절은 벌고 있는 1차 수급자들이 지원금을 계속해서 받고 있고, 그보다 한참 소득이 적은 나 같은 사람은 지원 자격조차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고용노동부는 “신속한 지원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수혜자는 심사 없이 지원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코로나19 확산이란 특수 상황에서 행정력의 대량 투입이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긴급했던 1차 사업이 지나고 2년간 다섯 차례나 추가로 지원금이 나가는 과정에서 이를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원자들이 국세청 과세표준증명원을 제출한 만큼 소득을 바로 확인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선 ‘행정 편의주의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고용부 관계자는 “1차 신청자 자료가 있지만 이를 전산상에 데이터화한 게 아니라서 파악이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정부로선 1차 신청자에게 소득기준 변경에 따른 자격 박탈 가능성을 알리지 않아 정책 일관성 차원에서 재심사를 하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애초 제대로 된 제도 설계를 하지 못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