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NFT, 다 망했다고?…작품만 좋으면 끄떡 없다"

입력 2022-08-21 17:39   수정 2022-08-22 14:01


미술과 대체불가능토큰(NFT)의 결합은 혁신일까, 사기일까. NFT를 옹호하는 이들은 최신 기술 용어를 줄줄 읊으며 “디지털 예술품을 사고팔 수 있게 해준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NFT에 시큰둥한 이들은 “실제 그림처럼 벽에 걸 수도 없는데 거액을 주고 산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인다. 최근 몇 달 새 NFT 작품 가격이 추락하면서 후자 쪽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NFT 미술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의 생각은 어떨까. 미디어아트 작가인 샘문(SAMMOON, 본명 문상호·41)이 들려준 답은 의외였다.

“NFT 시장이 엄청나게 나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잘나가는 작품들은 여전히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어요. 중요한 건 ‘무슨 기술이나 플랫폼을 이용하냐’가 아니라 ‘작품이 얼마나 좋냐’는 겁니다. NFT 시장이 망해도 잘하는 작가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예요. 저는 자신 있습니다.”

샘문 작가의 NFT·디지털프린트 작품 21점을 소개하는 초대전 ‘미래&영감과의 조우’가 22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개막한다. 2020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NFT 미술시장을 이끄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NFT 시장에서 그의 위상을 보여준 일이 있었다. 지난해 NFT 거래 플랫폼인 ‘클립드롭스’의 경매에서 샘문의 NFT 미디어아트 작품 ‘We are on top of the world’가 1800만원에 낙찰된 것. 수십 년 경력의 중견 화가 그림과 맞먹는 값이었다. 그가 일종의 ‘디지털 한정판 판화’ 개념으로 30개씩 복제해 판매한 NFT 작품 두 점은 NFT치고는 높은 가격(개당 70만~80만원)인데도 ‘완판’됐다. 올해는 국내 10대 대기업 중 한 곳에 판매했다.

경력이 일천한 샘문이 NFT 시장의 ‘떠오르는 별’이 될 수 있었던 건 탄탄한 기본기 덕분이다. 그가 처음 미디어아트의 길에 발을 들인 건 2000년 무렵. 평범한 공대생이던 그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접한 컴퓨터그래픽(CG)의 세계에 홀딱 빠져버렸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국 조지아의 사바나 칼리지 오브 아트 & 디자인(SCAD) 학부에 새로 입학해 미디어아트를 공부했다.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석사를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와 10여 년간 지상파 방송사 등에서 CG 디자이너로 일했다. 2011년에는 백남준으로부터 미디어아트를 배운 유명 작가 겐조 디지털과 함께 팝스타 비욘세의 퍼포먼스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샘문이 만드는 작품들의 핵심 주제는 ‘기술 발전의 명암’이다. “CG 일을 하면서 갈수록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광고에 나오는 ‘가상 인간’들은 실제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현업에서 느낀 문제의식을 작품에 담는데, 무거운 주제인 만큼 캐릭터나 이미지는 둥글둥글하고 재미있는 느낌으로 만들죠.”

이번 전시에서 그는 20점의 디지털 프린트 작품과 함께 모니터를 통해 NFT 영상 작품 ‘Blue mountain’도 상영한다. 디지털 프린트 작품은 대개 그가 만든 NFT 영상 작품의 일부다. 낙타 모양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Let me float’가 대표적이다. 올해 초 아트페어에 나와 800만원에 판매된 40초 길이의 NFT 영상 작품에서 한 장면을 따와 인쇄했다. 샘문은 “NFT 영상 중 집에 걸기 좋은 장면을 떼어냈다”고 했다.

“미디어아트라는 장르나 NFT에 얽매일 생각은 없습니다. 요즘엔 콜라주 기법으로 팝아트 느낌을 낸 그림을 시도하고 있어요. 매체나 기술이 어떻게 변하든, 좋은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전시는 다음달 15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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