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7시(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내에 있는 크립토닷컴 아레나(옛 스테이플스센터). 입구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가까스로 표를 구입한 1만5000여 명은 각각 150m에 이르는 6개 대기줄에 몸을 맡긴 채 출입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티켓 구매에 실패한 수천 명은 응원봉을 흔들며 공연장 주변을 서성거렸다. 폭스뉴스, CBS, NBC 카메라는 피부색은 물론 나이, 성별 모두 제각각인 관객들의 모습을 분주하게 담았다.
이들을 아레나로 끌어들인 건 ‘금발의 팝스타’가 아니었다. 이날 무대의 주인공은 한국에서 날아온 있지(소속사 JYP), NCT드림(SM), 케플러(웨이크원) 등 K팝 스타들이었다. 사흘(19~21일)간 K팝 스타들의 공연과 각종 부대 행사를 체험하기 위해 LA를 찾은 사람은 9만여 명. 이틀간 열린 K팝 콘서트(케이콘)에 3만 명만 들어간 만큼 나머지는 행사장 주변에서 열린 부대 프로그램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케이콘은 CJ ENM이 ‘K팝 세계화’를 위해 10년 전 미국 어바인에서 시작한 행사다. 모두 “한국 노래가 어떻게 세계 시장에 통하겠느냐”, “돈 내고 한국 노래 들으려는 미국인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걱정하던 때였다. 실제 행사장을 찾는 관객도 많지 않았다. 후원 기업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무모한 도전’이라며 다들 만류했지만 CJ는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 문화의 매력을 전 세계가 아는 날이 올 것”이라며 밀어붙였다. CJ의 예상은 적중했다. 2015년 BTS를 시작으로 블랙핑크, NCT 등 K팝 스타들이 줄줄이 나온 데다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 K무비·K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케이콘의 ‘몸값’도 덩달아 올랐다.
2012년 1만 명이었던 LA 관객 수는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는 10만 명으로 10배나 불었다. 이날 공연은 미국에서 3년 만에 열린 오프라인 콘서트였다. 90~220달러짜리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이날 현장을 찾지 못한 176개국의 한류팬 708만 명은 CJ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과 유튜브를 통해 공연을 봤다.
CJ는 부대행사로 Z세대(1996년~2010년대생)를 겨냥해 LA 컨벤션센터에 글로벌 오디션, 댄스 경연 프로그램 등을 준비했다. 경연을 통과한 팬들은 아이돌 그룹 케플러와 한 무대에 서서 춤을 추기도 했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과 부대 프로그램 참여자를 보면 “K팝은 10대·아시안·여성용”이란 선입견은 옛말이란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CJ ENM 관계자는 “케이콘 관객의 절반 이상은 비(非)아시아인”이라며 “남성과 30대 이상 관객 비중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젤라 킬로렌 CJ ENM 북미법인 대표는 “아이들 때문에 케이콘에 왔다가 스스로 팬이 돼 매년 참석하는 부모도 많다”며 “K팝이 주류 문화로 뜨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콘은 글로벌 기업들이 신제품을 소개하는 ‘마케팅 무대’로도 활용되고 있다. 올해로 8년째 케이콘을 후원하고 있는 도요타는 LA 컨벤션센터 안에 부스를 차리고 신차 ‘GR86’과 ‘GR수프라’를 전시했다. 제이콥 석 도요타 북미법인 마케팅 총괄은 “도요타는 오래전부터 ‘창의적인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와 소통한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케이콘이 이런 취지에 딱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맥도날드와 주얼리 기업 OHTNYC, 에스테틱 기업 아메리코 등 글로벌 기업들도 케이콘 후원 대열에 합류했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케이콘을 미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았다. K뷰티와 K푸드를 내세운 한국 기업들의 부스는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네이버웹툰과 손잡고 화장품 사업에 나선 한국 기업 슈피겐뷰티의 김명균 이사는 “2019년에 이어 올해도 케이콘에 참가했다”며 “당시 사흘 동안 판 물량을 올해는 하루 만에 끝낼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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