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카카오 M&A…1년8개월 끌다 '헤어질 결심'?

입력 2022-08-23 15:23   수정 2022-08-24 09:20

이 기사는 08월 23일 15:2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20일, 3년 만에 열린 SM타운 콘서트에는 인파로 가득 찼다. 공연장 수원월드컵경기장 일대 도로가 마비될 정도였다. 다시 결합한 소녀시대뿐 아니라 에스파 NCT 샤이니 보아 동방신기 등 SM엔터테인먼트 세계관(SMCU, SM Culture Universe)에 속한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했다. 동방신기가 "SMCU 익스프레스의 기장님"이라고 소개하자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환하게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그토록 원했던 SM엔터 경영권을 쥐었다면 공연장 분위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카카오 소속 아이유가 소녀시대와 함께 무대에 오르고, 팬들은 카카오 캐릭터 라이언이 그려진 응원봉을 흔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SM엔터 경영권 매각 협의가 이뤄진 지 1년반이 지났어도 카카오엔터의 희망대로 되지 않고 있다. 카카오엔터 측이 지난달 중순께 SM엔터에 마지막 인수 제안서(텀싯)를 보냈지만 의미 있는 진전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협상은 사실상 중단된 상황으로 전해졌다. 카카오 상황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그동안엔 새로운 제안이 나오면 2주 안에 새 제안이 오갔지만 이처럼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상황은 처음"이라며 "서로 마음은 식었지만 결별 통보를 미루면서 마지막까지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상 1兆" 카카오엔터, SM엔터 인수 총력
카카오엔터와 SM엔터가 처음부터 평행선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이수만 프로듀서가 물 밑에서 경영권 매각을 추진했던 2021년 말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가장 강력한 M&A 의지를 보인 곳은 단연 카카오엔터였다. 지난해 10월 CJ ENM에 단독협상권을 빼앗겼던 때에도 카카오엔터의 의지는 식지 않았다. 물 밑에선 끊임없이 SM엔터 측과 거래 재개를 위해 접촉에 나섰다.

결국 카카오엔터는 올해 2월 중순경 SM엔터와 CJ ENM 사이의 협상이 무산되자 곧바로 제안서를 새로 제출해 단독 협상에 돌입했다. 향후 SM엔터와 함께 메타버스 NFT 글로벌 진출 등 사업협력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인수 이후 5년간 이 프로듀서를 카카오엔터에서 영입해 음악사업 총괄을 맡기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카카오엔터 측이 제시한 가격도 파격적이었다. 카카오엔터는 이 프로듀서이 보유한 SM엔터지분 약 18.9%를 8900억원에 인수하겠다 제안했다. 당시 시가 대비 200% 이상 프리미엄이 반영된 가격이었다. 이 프로듀서가 카카오엔터의 기업가치를 11조~12조원으로 책정해 2000억원을 재출자해 카카오엔터의 주주가 되는 방안도 논의됐다. 지난해 7월 유희열·유재석씨가 소속된 안테나를 인수하면서 현금 일부를 재출자하게 해 카카오엔터의 주주로 끌여들인 방식과 동일한 구조였다.

카카오엔터 관계자들은 재출자를 반영하면 "사실상 1조원의 딜"이라고 SM엔터 측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거래 직후 글로벌 PEF들이 프리IPO로 투자할 것이고, 수년내 카카오엔터가 나스닥 등 상장에 성공하면 20조원은 물론 30조원도 넘길 수 있으니 이 프로듀서의 지분가치도 두 배 이상 오를 것이란 논리였다.

다소 황당한 계산이지만 당시만해도 이같은 카카오엔터의 자신감엔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말 카카오엔터의 현금 등 유동자산은 2100억원에 그쳤지만, 카카오엔터는 '성장성'을 무기로 시장의 유동성을 흡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카카오엔터는 글로벌 PEF로부터 회사 기업가치를 18조원으로 인정받고 최대 1조원가량을 조달해 SM엔터 인수금을 충당할 계획이었다. 각 PEF들도 국내 금융권에서 인수금융까지 알아보며 연초까지만 해도 사인만 앞두고 있었다.
예상못한 자본시장 급랭…라이크기획 수술도 눈앞으로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사인만 앞뒀던 글로벌PEF의 투자 유치는 무산됐다. PEF 본사에서 카카오엔터의 기업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투자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말이 시장에 파다했다. 이 때만 해도 카카오엔터는 곧 다른 투자PEF로부터 자금조달에 나서면 쉽게 인수대금을 확보할 것이라 낙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18조원에 달하는 기업가치엔 국내외 PEF도 고개를 저었다.

SM엔터 측에 어떻게든 계약 시기를 미루자고 요청해왔던 카카오엔터는 결국 지난 5월엔 인수 주체를 결국 본사인 카카오로 바꿔 협상을 이어갔다. 그리고 7월에 마지막 제안을 넣었다. 마지막 제안에서 인수가격은 크게 낮아졌다. 카카오가 이사회의 반발 등을 이유로 들며 인수대금을 6000억원 수준으로 깎아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식시장 침체 등으로 SM엔터의 주가가 점차 하락하는 점을 무기로 재협상하겠다는 전략이었지만 매각 측과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는 전언이다. 카카오가 문어발 확장 논란에 연내 계열사를 30~40곳 줄이겠다 밝힌 상황에서 자회사만 39곳에 달하는 SM엔터를 인수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엔터업계를 뒤흔들 M&A로 꼽히던 SM엔터 매각은 1년8개월 만에 다시 원점으로 회귀할 조짐이다. 카카오와 SM엔터 양측은 어떠한 구속력있는 계약(SPA)도 체결하지 않은 상황이다. SM엔터도 이달 들어 메타버스 자회사인 스튜디오 광야를 세우고 지난 4월엔 신기술사업금융업자인 SM컬처파트너스를 설립하는 등 독자 행보에 돌입했다. 이 프로듀서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을 제외하곤 전 방면에서 사업재편에 나섰다.

하지만 현재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양측이 쉽사리 공식 결별을 선언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SM엔터가 가장 강력한 인수후보를 내치지는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 프로듀서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으로의 과다한 수수료 지급 의혹 이슈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만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카카오도 SM엔터 인수 가능성이 배제되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성장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카카오모빌리티 매각 무산에 이어 이번 거래마저 무산되면 투자를 총괄해온 임원들의 입지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쉽사리 SM엔터와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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