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은 2020년 광복절 임시공휴일 지정과 관련해 연휴가 사흘로 늘었을 때 젊은 층이 “3일을 왜 사흘이라고 하느냐. 사흘은 4일 아니냐”고 항의했던 촌극을 가리킨다. 날짜를 헤아리는 순우리말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을 모르고 사흘의 ‘사’를 숫자 ‘4’로 잘못 이해한 탓이다.
지난해에는 “무운을 빈다”는 말의 ‘무운(武運)’을 모르고 ‘운이 없다(無運)’는 뜻으로 잘못 전달한 방송 뉴스가 화제를 모았다. ‘금일’을 ‘금요일’로 알고 항의한 일도 흔했다. 차라리 ‘암살(暗殺·몰래 죽이다)’의 뜻을 몰라 “김구 선생이 암(癌)에 걸려 돌아가신 거예요?”라고 질문한 사례는 귀여운 편이다.
문제는 단어 뜻도 모르고 항의한 사람들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낸다는 점이다. 적반하장 식으로 “내가 이해하지 못하게 말한 네 잘못”이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반(反)지성주의의 극단적인 단면이다. 동조자끼리 집단을 형성해 인터넷에 잘못된 여론을 퍼뜨리고 생떼를 쓰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한자 교육 부재와 독서 부족 등에서 원인을 찾는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청소년 디지털 문해력 조사’에서 한국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에서 최하위(25.6%)로 분류됐다. 글자는 알지만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률이 75%에 이른다는 보고서도 있다.
한자에 대한 오해도 문제다. 한국어 중 우리 고유어는 25%에 불과하다. 한자어가 70%에 이른다. 학술용어는 90%가 넘는다. 한자어는 외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다. 고교 때까지 한자 2000자만 배워도 ‘실질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독서율까지 높이면 금상첨화다.
마침 정부가 문해력 향상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문해력 향상을 위해 투자할 계획이 있는가’라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질문에 90%가 “있다”고 응답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한 국가의 품격과 문명은 그 나라의 어휘력이 좌우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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