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정부는 총 1004건의 규제개선 과제를 관리하고 있고, 이 중 140건은 법령 개정 등으로 개선 조치를 완료했다”고 성과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제가 직접 규제혁신 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도약과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하게 혁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 이 행사에는 130여 명의 중소기업 대표가 모여 “모래주머니는 전혀 줄지 않았다”고 한목소리로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점심 약속까지 취소해가며 이어지는 기업인들의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정권보다 강한 그림자 규제
역대 정권마다 규제 개혁은 국정의 주요 화두였다. 김영삼 정부의 ‘규제 실명제’, 김대중 정부의 ‘규제 기요틴(단두대)’, 노무현 정부의 ‘규제 총량제’, 이명박 정부의 ‘규제 전봇대’,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문재인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등으로 규제와의 전쟁이 이어졌다. 이 중 가장 기세등등했던 이는 박 대통령이었다. 그는 2014년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 끝장 토론에서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이자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라며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이 정도라면 지금쯤은 없애야 할 규제가 없는 게 맞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거꾸로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4861건의 규제가 새로 만들어졌거나 강화됐다는 통계가 있다. 뒤이은 문재인 정부 5년간 신설·강화된 규제는 5798건에 달한다. 하루평균 3개꼴이다. 어느 정권도 규제 개혁에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만큼 규제는 관료주의 위에 단단하게 뿌리 내려 생명력이 강한 데다 번식력 또한 예상을 뛰어넘는다.
윤 대통령 역시 규제를 ‘모래주머니’와 ‘신발 속 돌멩이’에 비유하며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규제 혁파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4월 대기업 250개와 중소기업 250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새 정부 규제개혁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는 답변(24.0%)이 ‘기대한다’는 대답(24.6%)과 비슷하게 나왔다.
'적극 행정' 서비스가 관건
현장의 규제 개혁 체감도가 낮은 것은 주 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 등 핵심적인 덩어리 규제 개선이 국회에서 공회전하는 탓만은 아니다. 규제 대부분은 각종 내규와 시행령·시행규칙, 행정 지도, 고시·공고, 인허가 조건 등에 똬리를 틀고 있다. 더욱이 기업이 현장에서 적용받는 규제 중 상당수는 명문화되지 않은 채 법령의 해석과 집행 과정에 숨어 있다. 소위 ‘그림자 규제’다. 이런 그림자 규제는 주로 소극 행정, 지연 행정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해소하는 게 여소야대 상황에서 규제 개혁 관련법을 개정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 역대 정부가 규제와의 전쟁에서 번번이 패한 주요한 이유다.
규제 혁신에 성공하려면 일선 공무원의 소극 행정을 혁파해야 한다. 전향적인 자세로 규정을 해석하고 숨어 있는 규제를 발굴해 개선하려는 공무원이 우대받는 공직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민간의 인센티브 시스템을 수혈해 파격적인 수준에서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 유명무실한 감사원의 면책 지원제와 국민권익위원회의 적극 행정 신청·소극 행정 신고 제도를 뜯어고쳐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법령이나 자치법규에 등록되지 않은 채 숨어 있는 그림자 규제를 양성화한 뒤 도려내는 일이 시급하다. 갈 길도 멀고 할 일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