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당선’은 ‘40대 기수론’과 견줄 만한 충격파를 던졌다. 36세 0선(選)의 청년이 도합 18선의 쟁쟁한 중진들을 제치고 제1야당 대표가 됐으니 ‘이준석 현상’ ‘시대의 아이콘’ ‘신드롬’이란 말들이 나올 만했다. 정치판의 고인 물을 퍼내고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지난 1년여 그는 이런 기대에 부응했나. 불행하게도 그가 보인 언행은 젊은 보수 리더로서 싹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실망감을 안겼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정치의 본연인 토론과 타협, 진중한 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디코이(decoy·유인용 미끼)’ ‘간장 한 사발’ ‘나즈굴과 골룸’ ‘양두구육(羊頭狗肉)’ ‘삼성가노(三姓家奴)’…. 외곽을 떠돌면서 생중계하듯 쏟아낸 조롱성 메시지들로 정치를 가십화, 희화화하는 데 일조했다. “저같이 여론 선동을 잘하는 사람” “흑화(黑化)하지 않도록 만들어달라” 등 협박성 발언도 일삼았다.
현상을 단어 하나에 압축시켜 담아내는 탁월한 기술을 잘만 활용한다면 강점이 될 수 있을 텐데, 온통 정적을 공격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스스로 한계에 갇혀버린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발언도 수위를 넘었다. “이XX, 저XX 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뛰었다”라더니 ‘신군부’, 패륜을 저지른 황제에까지 비유했다. 자신은 정의로운 검투사로 규정지었다. 그러니 ‘자아도취’라는 비아냥마저 듣는 것 아닌가. 외곽을 때려 논란을 증폭한 다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을 이끌어 가는 노회한 대중정치인의 전술을 젊은 유망주에게서 보는 것도 씁쓸하다.
대표 시절 청년의 꿈을 대변하는 ‘이준석표 개혁’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대표가 두 번이나 당무를 보이콧하고 지방을 떠돈 것은 전례가 없다. ‘보수의 젊은 기대주’가 정치판 ‘리스크’가 돼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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