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활법은 당초 ‘원샷법’으로 불릴 만큼 모든 기업을 아우르는 종합 정책 패키지로 준비됐다. 하지만 대기업이 기업 승계 등에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비판 여론이 제기되면서 지원 범위가 축소됐다. 기활법이 처음 제정됐을 때 조선과 기계 등 공급 과잉 업종과 산업 위기 지역의 기업을 지원하는 성격이 강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개정을 통해 전기차와 배터리 등 신산업까지 지원 범위를 넓혔다.
정부는 기활법 적용 범위를 더욱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법 개정을 통해 탄소중립·디지털 전환을 사업 재편 적용 범위에 포함시키겠다는 취지다. 아울러 기업이 사업 재편 심의와 정책금융 지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기업들이 각 정책금융기관에 일일이 찾아가서 금융 지원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사업 재편 심의 절차를 통과한 기업은 사업 재편 계획 승인과 동시에 정책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업 재편 기업을 주목적 투자 대상으로 하는 펀드를 신설해 2200억원 규모 투자를 지원하고, 7000억원 이상의 저금리 융자를 추가로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2016년부터 올해 6월까지 기활법 지원 대상 기업은 총 314개에 달한다. 올해엔 자동차 부품사 이씨스를 비롯해 40개 기업이 신사업 진출을 위한 사업 재편을 신청했다. 내연기관차 전장부품을 생산하던 이씨스는 자율주행차 통신융합 모듈 분야로 신규 진출할 계획이다. 이 밖에 기존 단칩 생산설비를 매각하고 다단칩 설비 투자에 나선 에이티세미콘, 방산사업 매출 확대를 위해 신규 설비를 매입한 화인, 핫멜트 신제품 출시를 노리는 애니테이프, 태양광발전소 제작설비를 매입한 전방재엔지니어링 등이 사업 재편에 나선 대표적 기업이다. 대기업 가운데는 한화솔루션이 울산 공장 매각과 친환경 가소제 생산을 위해 사업 재편을 신청했다.
기활법의 제도적 한계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사업 진출 기업은 상법상 절차 간소화 특례나 공정거래법 규제 유예 조치를 받을 수 없도록 제한돼 있는데, 대기업의 경우 제도를 이용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는 앞으로 기업별로 받던 사업 재편 신청을 대기업과 협력 업체 등 사업군별로 묶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 관계로 밀접한 가치사슬을 맺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다. 권용수 건국대 교양대학 교수는 “사업 재편 지원 범위에 제약을 두는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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