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5월. 영국 런던에서 3파운드짜리 미술 잡지가 하나 나왔다. 프리즈(Frieze·사진)라는 이름이었는데 파란색 표지에 커다란 노랑나비가 덩그랗게 그려져 있었다. 32페이지의 얄팍한 창간준비호였지만 보수적인 영국 미술계에 충격을 안겼다. 파격적 작품을 선보여온 젊은 예술가 그룹 ‘yBA(영 브리티시 아티스트)’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었다. 세계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거물의 태동이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불편하고 난해하지만 도도한 흐름이 돼가는 영국 현대미술의 저력을 프리즈는 제대로 알아챘다. 현대미술에 대한 비평의 장을 활짝 열어젖혔다.
프리즈의 눈은 정확했다. 창간준비호의 노랑나비 그림은 데이미언 허스트가 스물네 살에 그린 ‘Explosion(폭발)’이었다. 허스트는 프리즈 표지에 작품이 실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최고 권위의 미술상인 터너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일찌감치 허스트의 진가를 알아봤던 프리즈의 권위도 함께 치솟았다.
프리즈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창간 12년 만인 2003년 ‘프리즈 런던 아트페어’와 ‘프리즈 스컬프처’를 시작했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까지 진출해 5개의 아트페어를 운영하고 있다. 출판물도 3개 보유했다. 지구촌 미술시장을 뒤흔드는 아트페어의 중심이자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지위를 확실히 다졌다. 프리즈라는 이름은 고전 건축물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한 부분을 뜻하는 ‘Frieze', 데이미언 허스트가 골드스미스 대학 시절 친구들과 기획한 전시의 이름 ‘Freeze'에서 따왔다. 그 이름처럼 프리즈는 30여 년간 현대 미술계에서 광범위하고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갤러리와 예술가 그리고 컬렉터를 물 흐르듯 연결한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창조하고 주도하는 프리즈가 아시아 처음으로 서울에서 아트페어를 개최한다. 프리즈 서울은 올해로 21회째를 맞이한 한국화랑협회 아트페어(KIAF)와 맞물려 열린다. 다음달 2일부터 서울에서 사상 유례없는 ‘축제의 아트 위크’를 보낸다.
프리즈 서울과 KIAF는 단순한 미술품 거래 시장이 아니다. 본행사를 전후해 열흘 동안 이벤트가 풍성하게 열린다. 미술계의 중요한 의제를 나누는 콘퍼런스도 이어진다. 갤러리들은 밤늦게까지 관람객을 맞이한다. 아름다운 작품 앞에 멈춰서 시간을 잊어본 이들에게 2022년 늦여름의 서울은 거대한 아트 테마파크로 기억될 것이다.
김보라/성수영 기자 destinybr@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