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부분 미국인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에서 학자금 대출은 ‘시한폭탄’에 비유된다. 대학의 등록금은 통상 연간 수만달러에 달한다. 학자금을 대출받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는 이가 드물다. 4300만 명이 총 1조7500억달러(약 2330조원)의 학자금 빚을 지고 있다. 1인당 평균 약 3만7000달러(약 5000만원)다. 최근 물가와 금리는 오르는데 소득은 정체돼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차입자 중 16%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다. 학자금 문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지만, 그럴듯한 선심성 대책을 내기 좋은 이슈다. 미국 선거 때마다 학자금 대출 관련 공약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학자금 대출 탕감 방안을 발표해 논란이다. 채무자 1인당 최대 2만달러, 총 3640억달러(약 487조원)를 탕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역대 최대 규모다. 바이든 대통령은 “채무자들이 빚더미에서 나와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시작하게 될 것” “미국 경제에 이롭다”고 강조했지만 반론이 만만찮다.
우선 1980년대 이후 최악의 인플레 상황에서 덜컥 퍼주기 정책을 또 내놓은 점이다. 민주당에서조차 “인플레를 부추겨 빈부격차를 더 벌릴 것”(제이슨 퍼먼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인플레를 부추기는 비합리적이고 과도한 조치”(래리 서머스 전 재무부 장관)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그동안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사람들과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고졸자들도 공정하지 못한 정책이라며 반기를 들고 있다. 야당인 공화당도 “지지율이 바닥인 대통령이 ‘학자금 사회주의’에 사로잡혀 매표 행위를 하고 있다”고 공세를 펴고 있다.
포퓰리즘은 사면초가에 빠진 정치인들이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당장의 과실을 위해 비이성적 정책으로 대중을 현혹한다. 멀리 찾아볼 것 없이 한국에서도 대선 때마다 무책임한 지르기 경쟁을 신물 나게 본 터다. 선거를 앞두고 작아지는 정치인들에게서 민주주의의 헐값 추락을 목도한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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