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한 줄기 햇빛 아래 드러난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 살짝 벌어진 입술, 초록 베일과 붉은 옷의 인물은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이 사진은 ‘히말라야’, ‘차마고도’ 등 오지 다큐멘터리로 알려진 사진가 박종우가 1987년 파키스탄에서 찍은 것이다. 험준한 산맥을 따라가던 박씨는, 작은 마을 후셰의 한 가정에서 묵게 됐다. 이른 아침, 그 집의 10대 딸이, 외지인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무슬림 마을의 규칙을 어기고 작가 앞에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전등도 없는 토굴 같은 집이었지만, 마침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작가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고, 아이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 사진 속 주인공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그린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두 작품 속 인물들은 묘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듯하다. 특히 인물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가 신비감을 극대화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