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 26일 13:4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요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과 동시에 천재적 두뇌를 가지고 있어 굴지의 법률사무소에서 훌륭한 능력을 발휘하는 변호사라는 설정이다. 말하자면 고기능 자폐인, 즉 지적장애를 동반하지 않은 경우이면서 동시에 자폐적 특성상 본인의 관심 분야인 법전의 이해에 엄청난 집중력을 쏟아 뛰어난 법률 전문가가 된 사례로 그려진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 장애, 언어 및 비언어적 의사소통 장애, 상동행동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전반적 발달장애 일반을 아우르는 용어로, 개인마다 문제 행동의 종류와 정도가 각기 다르고 광범위하여 '스펙트럼 성' 장애로 불린다.
우리가 잘 아는 화가 중에도 우영우처럼 고기능 자폐로 추정되는 이가 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사실 반 고흐가 대중에게 이토록 잘 알려진 것은 물론 작품이 독특하고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살아 생전 보인 특이한 행동들로 인해 '기이한 아티스트'란 이미지가 대중에 각인된 영향도 크다. 그는 평생에 걸쳐 주변인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1888년 프랑스 남부 아를로 이주한 이후 정신병적 양상이 농후해져 폴 고갱과 크게 다투고 본인의 귀를 잘라 아는 창녀의 손에 쥐어주었던 것이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가슴과 복부에 총을 쏴 사망에 이른 에피소드도 잘 알려져 있다.
의학계는 지난 60여 년간 반 고흐가 보여준 비사회적 태도와 폭력성의 원인을 규명하려 노력해왔다. 이미 사망한 화가이므로 직접 진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하지만 다양한 기록물과 작품의 분석을 통해 우울증, 양극성 성격장애, 조현병, 메니에르병, 포르피린증, 뇌전증, 납중독,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뇌 손상, 매독으로 인한 뇌 손상 등을 추정한다. 그런데 미국 정신의학회의 진단기준서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5에 따라 그의 행동 패턴을 들여다보면 그의 추정진단 리스트에 자폐 스펙트럼이 추가되는 것이 적절해보인다.
그의 가족과 지인들이 남긴 편지 등의 기록물을 보면 빈센트 반 고흐는 유아기부터 혼자 놀았고 쉽게 분노했으며 그와 말을 섞은 사람들은 그를 특이하거나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왔을 수 있다. 두드러진 언어 지연이 없음에도 그가 평생에 걸쳐 타인의 언어 뉘앙스와 비언어적 신호를 읽지 못하고, 사회적 규율과 적정선의 경계를 이해 못 해 타인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자폐 스펙트럼 중 경증에 해당하는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 탓일 수 있다.
다음의 두 그림을 비교해보면 어떤 차이가 느껴지시는가?
인물의 시선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첫 그림인 <가셰 박사의 초상>의 경우 모델이 화가와 시선을 맞추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반 고흐가 그린 타인의 초상화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성이다. 시선 교류가 가능함을 볼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린 자화상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모델을 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 아를에서 고갱이 옆에서 조율하지 않으면 모델 못 해준다고 한 지노 부인, 다시는 그의 모델로 서지 않겠다며 절연한 아델린 라부 등의 그 예다. 이러한 면은 DSM-5의 299.00 A2항에서 규정된 자폐 스펙트럼의 특성인 "비언어적 의사소통 행동의 부족. 언어와 비언어 소통 통합에 어려움, 시선을 맞추지 못하는 문제, 바디랭귀지 문제, 제스쳐 이해 어려움"에 정확히 일치한다.
그의 특이점이 자폐 스펙트럼의 일환이라 추정하고 보면 많은 부분이 맞아떨어진다. 299.00 A3항은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 어려움. 친구 만들고 놀기 어려워 또래 친구 없음"을 자폐 스펙트럼의 특성으로 규정하는데, 반 고흐가 안톤 모브, 에밀 베르나르, 폴 고갱 등 동료 화가들과 예술에 대해 토론하고자 했지만 교류 초기 열정과다, 심한 흥분 양상을 보이다가 점차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며 상대가 설득되지 않으면 폭력 양상을 보여 반복적으로 친구를 잃는 것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또 299.00 B항에서는 "움직임, 도구사용, 언어에 있어서의 반복"과 "같은 것, 루틴의 고집, 언어 및 비언어 사용에 있어서 의식화된 패턴"을 규정하는데, 전자의 경우 그가 반복적으로 두 손을 비비고 몸을 앞으로 꺼떡꺼떡 발작적으로 움직여 주변인들이 불편해한 기록이 다수 있고, 동생 테오와 나눈 편지에서 자신이 시작한 그림을 반드시 당일에 마치려는 억제불능의 욕구가 있고 이게 이뤄지지 않을 시 심한 액팅아웃(부정적 감정을 행동화하는 것)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자기가 정한 루틴을 지켜야만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자폐증 개념이 레오 캐너, 한스 아스퍼거 등에 의해 20세기에나 규명되었으므로 1890년 사망한 반 고흐가 자폐였다는 진단을 받은 적은 없으나, 만일 그가 오늘날 작품 활동을 했다면 그를 만난 의사가 그에게 자폐 스펙트럼을 진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겠다.
매체를 통해 반 고흐나 우영우의 사례를 접하며 자폐적 기질이 곧 천재성이라 오인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극소수의 천재성 자폐보다는 경중, 중등, 중도 자폐인의 숫자가 훨씬 많고, 이 경우 지적 능력을 포함한 다른 문제들이 함께 나타나 일상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대다수다. 또한 반 고흐의 사례에서 보았듯 모든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이들이 우영우처럼 주변인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반 고흐의 '괴팍함'을 견디지 못해 동네 사람들은 추방 청원을 하거나 그를 집단 린치하기도 했다. 미셸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주장한 바 19세기 서구사회는 인간의 정신 건강을 표준화하여 '비정상'의 범주에 속한 이들을 배제하고자 했던 것이다. 현대사회는 이에 대한 반성 의식을 갖고 그것을 '비정상'이 아닌 '다름'으로 보아 사회로 통합시킬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우영우나 반 고흐에게 보내는 애정 어린 시선은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려는 성숙한 사회의 첫걸음일 것이다. 이때 극화된 천재성, 극화된 사랑스러움을 너머 자폐 스펙트럼의 다양한 특징을 함께 수용해야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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