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홀 쇼크'에 양적긴축 폭풍까지 밀려온다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입력 2022-08-28 03:59   수정 2022-09-05 08:01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잭슨홀 쇼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으로 시작해 인플레이션으로 끝난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잭슨홀 '9분 연설'은 구구절절 맞는 얘기입니다.

거머리같은 인플레이션을 떼내려면 피를 흘릴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인플레이션 고착화를 막겠다는 명분은 좋지만 그래도 고강도 긴축의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투자자들은 괴롭습니다.



그런데 블랙홀이 된 잭슨홀로 끝이 아닙니다. 이번 주에 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다른 강타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금리인상에 주전자리를 내준 '양적긴축'(QT)이 2군에서 몸을 키워 콜업 대기 중입니다. 그리고 파월 감독이 지휘하는 긴축 작전의 보증수표인 8월 고용보고서가 호시탐탐 주전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정인설의 워싱턴나우'는 매주 월요일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인 '한경 글로벌마켓'에서 유튜브 영상과 온라인 기사로 찾아뵙고 있습니다.
"QT는 양적긴축이 아니다"


파월 의장이 양적긴축을 처음 공식화한 올 1월만 해도 시장은 긴장 상태였습니다. 양적긴축이 빠르고 강력하게 진행될 것이라던 예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2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난 Fed의 자산을 줄일 필요성도 커졌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틀렸습니다. QT는 빠르고 강하지도 않았고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QT는 양적긴축을 뜻하는 Quantitive Tightening이 아니라 조용한 긴축(Quiet tighteing)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5월부터 매달 475억달러씩 진행될 것이라던 QT는 절반을 겨우 채우는 정도였습니다. 5월에 249억달러로 시작해서 6월 231억달러, 7월 172억달러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을 재투자하지 않는 소극적 형태로 자산을 줄이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좀 더 심각합니다. Fed의 대표 자산은 미 국채와 주택담보부증권(MBS) 입니다. 이 가운데 MBS는 거의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7월에 전달보다 240억달러가 늘었습니다.

8월과 6월을 비교하면 8월에 Fed가 보유한 MBS 자산이 더 많습니다. 오히려 양적긴축이 아니라 양적완화로 불러야할 형국입니다.
꼬여버린 양적긴축


그렇다면 왜 이렇게 QT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걸까요. 우선 금리인상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3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이 나오는 상황에서 QT는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상책입니다.

둘째로 채권시장을 보면 QT는 잠자코 있는 게 맞습니다. 현재 채권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장·단기 금리 역전입니다. 기준금리를 따라 올라가는 단기금리는 너무 올랐고 경기침체를 반영하는 장기금리는 너무 낮은 상태입니다.

이 상황에서 Fed가 보유한 채권을 던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특히 단기채권 시장은 요동칠 수밖에 없습니다. 가뜩이나 오르고 있는 단기채권 금리에 기름을 부을 수 있습니다. 채권 금리를 가격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이유는 MBS입니다. 기준금리가 올라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급등하고 있는데 여기에 Fed가 MBS를 방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미국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30년 모기지 금리는 폭등할 수 있습니다. Fed 앞에서 항의시위가 일어나고 파월 탄핵 얘기까지 나올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Fed는 MBS 앞에서 특히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테라와 루나가 Fed의 구세주?


가장 큰 문제는 Fed를 대체할 현실적 대안이 없다는 점입니다. Fed는 6조달러에 가까운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대 큰 손입니다. 2위인 일본은 1조2000억달러가 조금 넘고 3위인 중국 보유량은 1조달러에도 못미칩니다.

그런데 가장 큰 손이 국채시장 매수 명단에서 빠진다고 선언했습니다. 보유한 국채마저 팔겠다는 겁니다. 당연히 2위, 3위가 받아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중국은 미·중 갈등 이후 미 국채를 계속 팔고 있고 일본은 엔화 약세 때문에 화끈하게 미 국채 시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국이나 스위스 같은 유럽 국가들이 일부 받쳐주고 있지만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그나마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와 루나 사태가 역설적으로 희소식이 됐습니다. 테라 사태 이후 다른 스테이블 코인 업체들은 회사채 대신 미 국채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그나마 가장 안정적이라는 미 국채를 사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JP모간에 따르면 테더와 서클 등 스테이블 코인 발행 업체들은 미국 단기 국채만 800억달러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 단기국채 시장의 2%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닙니다.

Fed의 가려운 곳을 코인 업체들이 긁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서 파월 의장이 잭슨홀에서 작심 발언을 했는 지 모르겠습니다.



국채시장은 그래도 Fed를 대체할 대안들이 있지만 MBS엔 그런 존재 조차 없습니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사줘야 하는데 금리 급등기에 부동산 관련 상품에 투자하기는 꺼려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QT와 QE는 반대말이 아니다"


QT의 근본적 한계도 있습니다. 사전적으로 QT는 양적완화(QE)의 반대말입니다. 형식적으론 QE는 국채와 MBS를 사들여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겁니다. 반대로 QT는 Fed가 사들인 국채를 시중에 팔아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겁니다. 결과만 놓고 하면 QT는 유동성을 줄이는 것이고 QE는 유동성을 늘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꼭 그렇게 작동하지 만은 않습니다. QT를 한다고 유동성이 확 줄어들까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QE를 통해 시중에 유동성이 풀렸습니다. 이 때문에 은행으로 요구불예금이 몰리고 은행은 이를 바탕으로 신용대출을 확 늘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QT로 줄이는 채권 만큼 은행이 대출한도를 줄일까요. 한 번 늘린 대출을 회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추세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순 있어도 기대하는 만큼의 유동성 감축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올해 잭슨홀 미팅에서 바이럴 아카라 뉴욕대 교수도 'Fed 대차대조표를 둘러싼 정책 제약에 대한 재평가'란 발표를 통해 이런 점을 지적했습니다.

금리 인하 등을 통해 유동성을 늘려도 유동성 증가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걸 '유동성 함정'이라고 하는데 유동성을 줄여도 유동성 감소 효과를 보지 못하니 '역(逆) 유동성 함정'이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결론은 인플레이션


파월 의장은 잭슨홀 미팅에서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가 될 때까지 금리를 올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당분간 금리인하는 꿈도 꾸지 말라고 못박았습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에서 '인플레이션 터미네이터'를 자처한 것입니다.

파월 의장은 1년 전 잭슨홀 미팅에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희대의 사기극이 됐습니다. 이런 망언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뒤늦게 투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이언트 스텝이 '뉴 노멀'이 돼 버렸습니다. 일단 금리를 25bp씩 올리는 때가 와야 다들 숨을 돌릴 수 있을 전망입니다. 그때 QT도 비로소 본격화 되겠죠. 양적긴축이 호재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반대로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거나 오히려 더 심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100bp를 올릴 수 있고 QT를 동시에 써야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 9월부터 QT 한도가 월 475억달러에서 950억달러로 늘어납니다. 빅스텝이나 자이언트 스텝을 밟는 상황에서 QT까지 확 늘린다면 글로벌 자산시장은 어떻게 될까요.



이번 주엔 미국의 8월 고용보고서도 나옵니다. 노동시장이 탄탄하다고 재확인되면 Fed는 안심하고 금리를 올릴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노동시장까지 무너지면 상황은 복잡해집니다. 단기적으로 금리 인상 속도가 늦어질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을 진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시장까지 흔들리면 어떡하냐고 불안해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게 인플레이션에 달렸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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