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된 소아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졸겐스마의 단가는 20억원이다. 건보 적용으로 약품 가격은 500만원으로 떨어졌지만 처방 대상을 생후 24개월까지로 제한해 여전히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 이들이 많다. 소아희귀질환으로 비싼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목숨을 잃거나 영구 장애를 입는 아이는 한 해 수백 명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가 뜬 눈으로 어두운 천장만 올려다봤을 수많은 밤들. 문재인 케어에 들어가는 비용을 이들에게 집중했다면 2017년 이후 사라졌을 고통이다. 문재인 케어로 누군가는 컴퓨터단층촬영(CT) 비용과 2~3인 병실 입원비를 아꼈겠지만 어린 생명을 구하는 것이 먼저 아니었을까.
우리가 아는 보편적 복지는 대부분 비슷한 윤리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복지와 도움이 꼭 필요한 이들을 못 본 체하고, 상위 계층에 있으나 마나 한 혜택을 굳이 나눠주려고 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관심이 높아진 자폐 스펙트럼 장애도 마찬가지다. 자폐아를 둔 부모들은 가능한 한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대부분 이루지 못하고 시설에 맡긴다. 하루 종일 자폐 자녀를 돌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포함해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은 올해 2080억원으로 이 중 일부가 발달장애인 일상 활동 지원에 사용된다. 이를 통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 5.8시간. 그나마 작년 4.5시간보다 늘었다. 반면 올해 서울 시내 유치원 및 초·중·고교 무상급식에 들어갈 예산은 9302억원이다. 상위 20%만 돈을 내고 급식을 먹어도 발달장애인 돌봄 지원 시간을 12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인구 감소에 저성장까지 겹쳐 넉넉한 예산을 확보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고령화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기존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보편적 복지제도는 꼭 필요한 이들에게 돌아갈 자원을 강탈하는 성격을 띠게 된다. 윤석열 정부에서 기존 복지제도를 구조조정하며 꼭 염두에 둬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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