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3년도 예산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 가운데 하나는 24조원 규모의 지출구조조정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지출구조조정이고, 예년(10조원 안팎)의 두 배 수준이다. 역대 정부들은 해마다 "역대급 지출구조조정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막상 예산안을 짤 때가 되면 10조원 규모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장 각 부처에서도 구조조정 대상 사업에 대해 "꼭 필요하니 예산 삭감을 최소화해달라"고 읍소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전언이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처음부터 재량지출의 10%를 무조건 삭감하라는 게 기획재정부의 방침이었고, 예년과 달리 '일부 사업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호소도 통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중 연 평균 8.7% 수준의 재정 확장을 했고, 그 결과 국가채무는 2017년 660조2000억원에서 올해 1068조8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이 기간 36%에서 50%로 높아졌다. GDP 대비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 비율은 2017년 1.0%에서 올해 5.1% 수준으로 악화됐다.
정부 안팎에서는 복합 경제 위기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휘청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간 국제신인도의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던 한국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 있는 재정 운용을 위해서라도 방만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의 기조 전환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기재부는 4대 유형을 중심으로 지출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첫 번째 유형은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재정립할 수 있는 분야다. 재정으로 지원하던 단순노무 노인일자리를 줄이는 대신 민간 중심 일자리를 늘리는 게 대표적이다. 기본적인 산업 여건이 조성된 태양광 및 스마트공장 구축 등도 민간주도로 전환하기로 했다.
두 번째 유형은 재정 투자를 효율화할 수 있는 분야다. 현장의 실제 수요를 점검해 지원수준을 적정화하자는 취지인데, 수소자동차 보급사업 등이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세 번째 유형은 한시지출 정상화다. 코로나19 방역에 필요한 재정과 소상공인 손실보상 지원에 투입된 재정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공공부문의 지출 구조조정도 함께 이뤄졌다. 성과가 낮은 위원회 조직을 정비하고, 4급 이상 공무원 보수를 동결(5급 이하는 1.7% 인상)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을 역대 최대 폭(4인가구 기준 5.47%)으로 인상하면서 복지 대상자가 10만명 가까이 늘어나게 됐고, 생계급여액도 4인가구 월 기준 153만6324원에서 162만289원으로 오르게 됐다. 이에 따른 재정 투입 규모만 7000억원 이상 늘었다. 또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원도 확대했다. 최상대 기재부 2차관은 "코로나19 관련 보건 부분 예산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복지 관련 예산 증가율은 5.6%이며, 주요 취약계층에 대한 직접 지원 규모만 놓고보면 전년 대비 12% 가량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국방 예산은 전년 대비 2조5000억원(4.6%) 늘어난 57조1000억원이었다. 병 봉급이 인상(병장 기준 월 67만6000원→100만원)된데다 한국형 3축체계 관련 예산도 증가했다. 연구·개발(R&D) 분야 예산은 9000억원(3.0%), 환경 분야 예산은 5000억원(3.9%), 농림·수산·식품 분야 예산은 6000억원(2.4%) 늘었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은 5조6000억원(18.0%) 줄었는데, 소상공인 손실보장 등 한시 지원이 종료된 결과다.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예산도 28조원에서 25조1000억원으로 2.8% 감소했다. 일부 사업을 지방으로 이양하면서다. 지방도 위험도로 및 교통안전환경 개선 사업 예산이 2156억원에서 전액 삭감됐고, 주차환경개선 사업 예산도 2418억원에서 0원이 됐다. 도시재생사업은 사업유형을 통폐합하고 신규 사업지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예산이 8930억원에서 5960억원으로 줄었다.
문화·체육·관광 분야 예산도 9조1000억원에서 8조5000억원으로 조정됐다. 마찬가지로 일부 사업이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간 결과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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