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FnC의 혁신은 유 대표의 전임자이자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던 이규호 코오롱글로벌 부사장 때부터 시작됐다. 유 대표는 “이 부사장 주도로 2020년에 직급제를 없앴다”며 “고참 임원들이 여러 브랜드를 묶어서 관리하던 사업부 시스템을 없애고, 대신에 각 브랜드 매니저가 최종 의사 결정까지 할 수 있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당장 성과가 나지는 않더라도 잠재력이 풍부한 '시리즈' 등 6개 브랜드는 사내 벤처처럼 키우기 위해 아예 사장 직속으로 뒀다. 연초에 예산과 앞으로 2~3년에 대한 큰 그림, 전략에 합의가 이뤄지면 브랜드 운영은 실무자에게 온전히 맡기는 방식이다. 유 대표는 “WAAC이 대표적으로 성공한 사례”라며 “최근 별도 법인으로 분사시켰다”고 말했다.
그룹 지주사에서 투자·전략 업무를 주도했던 경험을 살려 유 대표는 코오롱FnC의 영역을 글로벌로 확대하는데에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지포어 등 명품 브랜드를 여럿 보유한 리치먼드그룹이 해외 동반 진출을 제안하는 등 잭니클라우스, 프랑의 이로 등 유명 해외 패션 회사들이 코오롱FnC의 상품 기획력과 디자인 역량을 높이 사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로 본사는 아예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를 함께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을 정도다. 유 대표는 “내년 50주년을 맞는 코오롱스포츠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프랑스 주요 백화점에 입점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합작사가 우리에게 늘 요구하는 것은 한국적인 디자인과 마케팅”이라며 “교류가 많이 줄긴 했지만 중국 패션 시장 역시 여전히 기회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변화는 K패션의 세계화에도 중요한 의미라는 평가가 나온다. ‘맨땅에 헤딩’하듯 한국 브랜드를 무작정 해외로 가져가거나 반대로 해외 유명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와 판매만하는 데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유 대표는 “시장을 알려면 각종 데이터가 필요한데 이를 혼자하기는 어렵다”며 “WAAC만 해도 내년엔 PGA골프쇼에 참여해 현지 파트너를 물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즘 유 대표의 또 다른 화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다. 그는 이를 “나일론을 처음 만든 회사의 책임감”이라고 표현했다. 2012년에 ‘래코드’라는 재활용 패션 브랜드를 만든 건 일종의 ‘결자해지’차원이었던 셈이다. 코오롱FnC가 패션업계 ESG 경영의 원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유 대표는 “디지털 전환도 결국은 ESG 경영의 일환”이라며 “당장은 어렵겠지만 수요를 예측해 재고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제조 방식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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