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으로 유명한 나영석 PD가 ‘뿅뿅 지구 오락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리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출연자들에게 트렌디하지 못하다고 놀림 받았다. 리플이 아니라 댓글이라는 것이다. 리플이나 댓글이나 다 같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MZ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을 수 있다. 물론 예전에도 댓글은 존재했다. 콘텐츠에 대한 생각을 글로 남기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오래된 콘텐츠 소비 방식이다. 그러나 요즘의 댓글을 들여다보면 예전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시청자들은 적극적으로 콘텐츠에 대한 해석이나 의견을 댓글로 공유한 뒤 다른 사람의 반응을 확인하고 다시 댓글을 남긴다. 또는 자기의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댓글로 소통한다. 마치 놀이를 하듯 댓글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 콘텐츠는 수단일 뿐 오히려 댓글 자체가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댓글은 콘텐츠 속의 또 다른 콘텐츠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관람한 후 댓글을 보면서 영화의 장면과 대사들이 갖는 다양한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다시 볼 결심을 하게 됐다. 댓글이 아니었다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수많은 디테일을 알게 될 때마다 감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정준(김우빈 분)의 엄마가 아들의 여자친구를 처음 만나 고단했던 삶에 공감하며 ‘고생 많았다’고 위로하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따듯하다. 영상에 달린 수백 개의 댓글은 작가와 감독이 미처 다 이야기하지 못했을 다양한 해석과 경험으로 영상의 의미를 훨씬 풍요롭게 한다. 이제는 그 영상을 다시 볼 때마다 댓글들이 함께 떠올라 뭉클해진다. 댓글을 통해 콘텐츠에 숨겨진 의도와 의미를 알 수 있어서 댓글은 콘텐츠만큼이나 재미있고, 더욱 콘텐츠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준다.
또 댓글은 자기만의 경험과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양방향 채널이다.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 중 군대 내 괴롭힘을 다루는 클립 영상에는 수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많은 사람이 피해자를 안타까워하고 가해자를 질타하며, 자신의 군대 경험을 공유했다. 해당 클립은 10분이면 볼 수 있지만, 댓글을 읽는 데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댓글을 읽으며 같이 분노하고 함께 슬퍼하면서 영상 시청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댓글은 좋아하는 콘텐츠를 다시 소환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다. 디지털에서는 오래된 콘텐츠도 휘발하지 않고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종영된 콘텐츠에 댓글을 달았는데 다시금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콘텐츠의 팬으로서 꽤나 뿌듯한 일이다.
이렇게 댓글이 콘텐츠 소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자 콘텐츠 창작자들도 댓글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깻잎 논쟁처럼 다양한 토론 거리를 제공해 시청자들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기도 하고, 댓글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시청자와 함께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시청자는 더 이상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시청자는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을 찾아내고, 이를 매개로 놀거리를 발굴하는 진취적 사용자이며 생산자다. 콘텐츠 회사나 창작자들도 시청자와 활발하게 소통하며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시청자들의 댓글에 귀 기울이고 있다. 거기에 플랫폼들이 이용자의 댓글이 많은 콘텐츠를 더 자주 노출하거나, 댓글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댓글의 힘은 점점 강해질 것이다.
좋아하는 콘텐츠라면 댓글을 통해 팬덤을 표현해 보자. 콘텐츠에 대한 애정이나 숨겨진 의미, 혹은 연관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좋아하는 콘텐츠를 훨씬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또한 창작자들과의 소통으로 콘텐츠 방향에도 관여할 수 있다. 어린 왕자의 여우가 여느 여우와 다르듯 댓글로 관계를 맺은 콘텐츠는 자신만의 특별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 아울러 국내 미디어들도 댓글로 형성된 콘텐츠 팬덤을 제작과 사업에 더 잘 연계할 수 있도록 자체적 댓글 공간 등 수집 및 활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종민 CJ ENM IP개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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