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생활하는 10년 동안 수많은 국가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하며 낙방과 탈락을 경험했지만, 창업자로서의 낙방 경험은 교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이 크다.
‘서너 명의 심사위원도 설득하지 못하는 내가 과연 직원을 설득하고 고객을 설득할 자격이 있을까?’
상상은 또 다른 상상을 낳고 결국 전혀 근거 없는 극단의 시나리오가 나의 멘털을 붕괴하기에 이른다.
‘우리 회사는 망할 거야!!!’
그런데 신생 스타트업이라 아직 딱히 월급 줘야 할 직원 하나 없고, 돈 나갈 데라고는 본인 인건비 정도인 구멍가게 수준의 스타트업이 망해봐야 망할 것도 없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 것은 창업과 기술에 대한 확신과 희망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이러니하게 이러한 확신과 거대한 희망이 창업자를 창업으로 인도하는 원동력이긴 하지만, 또한 이로 인해 마음의 상처도 쉽게 받는 게 창업자의 운명이다.
대한민국 스타트업 중 국가과제에 지원해보지 않은 기업은 드물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게 된 원동력도 이런 스타트업 창업 지원 정책 덕분이다. 특히 기술 기반 창업 기업을 위한 정부의 다양한 기술 지원 정책은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풍성하다.
그런데 과연 스타트업 지원사업 심사 기준이 일반 대학이나 연구소 지원사업과 같은 기준으로 중복성 검사를 하는 것이 타당할까?
스타트업의 핵심은 실패를 통한 성장이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서 실패를 맛보고 이를 통해 다시 제품을 개선하고 보완하고 필요한 기술을 추가로 개발하는 작업을 반복하며 성장하는 것이 스타트업이다. 그런데 과거 비슷한 기술 분야로 지원했다고 해서 다시 기술 개발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은 스타트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과 연구소를 대상으로 지원한 국가 기술 개발사업의 성공률은 90%에 이른다. 연구개발은 본질적으로 실패를 기본 가정으로 하는 것인데 성공률 90%라는 것은 연구 주제부터가 도전적인 연구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이런 통계에 익숙한 평가 시스템 덕분에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스타트업들의 기술 개발 지원도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것처럼 관리되고 평가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시작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계획해 로켓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일단 시작하고 고친다’란 공격적인 방식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연이은 발사 실패에도 백기사를 자처한 곳이 바로 미국 정부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동일한 기술 개발에 계속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06년 상업용 궤도운송서비스 프로그램을 통해 스페이스X에 약 3억달러를 지원했다. 2008년 말에는 16억달러 규모의 상업용 재보급 서비스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우리나라에도 유니콘 스타트업이 수십 개에 이른다. 그러나 그 많은 기술 개발 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아직 기술 창업을 통한 유니콘 기업이 없다는 것은 되짚어볼 만한 이슈다.
장영재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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