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건설업계가 미분양 공포에 떨고 있다. 금리인상 속 주택 매수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서울, 경기 등 수도권 분양시장에서도 미달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3만1284가구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만5198가구에 비해 105.8%(1만6086가구) 늘었다.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도 7388가구를 기록, 지난 5월 말 6830가구까지 줄어든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다 지은 후에도 주인을 찾지 못한 집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분양 시장에서 인기가 높았던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도 역시 부진한 모습이다.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는 4529가구로 집계됐다. 2020년 1월 4901건 이후 2년 6개월 만에 가장 많은 양이다. 경기도가 3393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이 592가구, 인천이 544가구로 뒤를 이었다.
'선당후곰(일단 당첨된 후에 고민한다는 신조어)'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서울에서도 미달 사례가 잇따랐다. 서울 구로구 오류동 '천왕역 모아엘가 트레뷰'는 지난달 134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1순위 청약에서 체면을 구겼다.
지난 6월 금천구 독산동 '신독산 솔리힐 뉴포레' 이후 두 달 만에 나온 서울 공급 물량이었지만, 첫날 접수한 청약 통장이 114건에 그쳤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자 선호가 높은 '국민평형' 전용 84㎡가 모두 미달했다.
이틀 동안 1순위 청약을 받은 결과 천왕역 모아엘가 트레뷰는 95가구를 모집한 전용 84㎡ A타입에 87명만 몰리며 0.9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34가구를 모집한 전용 84㎡ B타입도 예비 당첨자 없이 34명 지원으로 1순위를 마감했다.
브랜드 단지도 미달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달 경기 평택시에 공급된 'e편한세상 평택 라씨엘로(2-1BL)'는 953가구 모집에 352명, 'e편한세상 평택 하이센트(4BL)'는 816가구 모집에 385명만 접수하면서 각각 431가구, 601가구가 미달했다. 선호도가 높은 브랜드 단지이지만, 두 곳에서 발생한 미달 물량만 1000가구가 넘는다.
공급물량의 90% 이상이 미달로 남은 경우도 있다. 경기 안성시 공도읍 '라포르테 공도'는 지난달 980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청약에 38건만 접수됐다. 전체의 약 96.2%(942가구)가 미달된 것이다.
청약시장에 대한 관심이 줄면서 청약통장 가입자 수도 사상 처음 감소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전국 주택청약종합저축 전체 가입자 수는 2701만9253명으로 전월 2703만1911명에 비해 1만2658명이 줄었다. 전국 단위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수가 줄어든 것은 2009년 통합형 주택청약종합저축이 출시된 이후 처음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사들 사이에서는 미분양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2년간 사라졌던 견본주택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이면에는 거리두기 해제라는 명분 외에 이러한 불안감도 작용했다는 평가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가상현실(VR) 등을 이용한 사이버 견본주택은 고객들의 호응을 끌어내기에 한계가 있었다"며 "견본주택은 가전이나 가구를 직접 확인하고 공간을 가늠할 수 있어 많은 고객이 찾는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현장 분위기를 살피면서 직접 주택을 안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오피스텔 등 상품 단가에 비하면 경품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은 편"이라며 "흥행에 실패해 운영·마케팅비를 더 지출해야 하느니 마케팅을 강화해 분양률을 높이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분양 시장의 찬 바람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경기 불확실성,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 확대, 분양가 상승, 낮아진 시세 차익 기대감 등이 맞물리면서 관망세가 확산하고 있다"며 "청약시장의 주춤한 흐름이 계속되는 가운데 청약 당첨자의 이탈 사례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주택 수요가 줄고 거래 시장도 냉랭한 가운데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과 중국의 경기 둔화, 유럽발 물가 쇼크 등 대외적 이슈도 비우호적인 상황"이라며 "당분간 주택시장의 분위기가 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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