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1조 협상 거부 끝 2900억 배상…한동훈 "끝까지 다툴 것"

입력 2022-08-31 18:31   수정 2022-08-31 20:08



지난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에 나선 지 20년 만이자 분쟁이 시작된 지 10년 만에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 결론이 나왔다.

31일 법무부는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ISDS) 사건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로부터 이날 오전 9시께(한국시간) 우리 정부가 론스타 측에 2억1650만 달러(한화 2900억원) 및 이자(2011년 12월부터 완제일까지 한 달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 기준)를 배상할 것을 명하는 내용의 판정문을 전달받았다.

앞서 론스타는 지난 2012년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약 46억8000만달러(약 6조1000억원)를 배상하라며 분쟁을 냈다.

ISDS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법령이나 정책 등으로 피해를 봤을 때 ICSID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쟁점 사안 중 론스타가 나머지 금융 쟁점 및 조세 쟁점과 관련해 청구한 금액에 대해서는 중재판정부의 관할이 없거나 국제법 위반이 없다고 보고 기각했다.

국내 소송을 기준으로 할 때 원고 측 책임을 50%가량 인정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이 같은 큰 폭의 ‘과실상계’ 이면에는 론스타에 대한 형사 유죄판결이 있었다.

론스타는 2003년 1조3834억원 헐값에 외환은행(지분 51%)을 인수했다.

헐값 매각과 인수 자격 논란이 가라앉지 않으면서 2006년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론스타 수사에 나섰다.

대검 중수부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허위로 감자(자본 감소)계획을 발표해 외환카드 주가를 고의로 떨어뜨렸다며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와 법인을 기소했다. 주가 하락으로 론스타가 외환은행 합병 비용을 아껴 123억원의 부당이득을 얻고,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것이다.

유 전 대표는 2011년 징역 3년이, 론스타는 벌금 250억원이 확정됐다. 즉 론스타가 매각금액을 낮추기 위해 주가조작을 했기 때문에 매각 지연으로 인한 가격하락분을 모두 정부가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당시 수사팀에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부부장검사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있었다.

아울러 박영수 특별검사와 채동욱 전 검찰총장 등이 투입된 초호화 수사팀이었다. 중수부 검사들이 총동원됐는데, 이때 중수부 면면을 보면 윤 대통령 외에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복현 금감원장 등은 물론 최근 검찰총장 후보군에 올랐던 여환섭 전 법무연수원장도 있었다.

수사 대상도 화려했다. 검찰은 당시 권오규 경제부총리,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이정재 전 금감위원장 등 전현직 고위 경제관료들이 모두 검찰 수사 대상이었다. 하지만 수사 성적은 좋지 않았다. 9개월 동안 수사에도 고위 관료들에 대한 혐의점을 입증해내지 못했다. 당시 외환은행 매각 실무책임자인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기소하기는 했지만, 변 전 국장은 1·2심은 물론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확정받았다.

9개월에 걸친 수사와 2년 동안의 공판 과정을 거치면서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2007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외환은행 매각 계약(60억1800만달러)을 맺었지만,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검토하는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2008년 HSBC가 인수를 포기했다. 론스타는 2010년 하나은행에 4조6888억원에 넘기는 계약을 했지만, 한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미뤄 2012년 그보다 적은 3조9156억원에 팔았다.



이후 한국 정부 때문에 손해를 봤다면서 이에 따라 분쟁을 제기한 것이다.

이번 ISDS의 핵심 쟁점은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부당하게 미루는 바람에 외환은행 가격이 내려가 론스타가 손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판단이었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국내 법령에 규정된 매각 승인 심사 기간을 넘겨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BIT)을 위반했고, 매각 가격을 낮추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론스타 측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11월 법무부에 서한을 보내 8억7000만달러(약 1조원)를 합의금으로 주면 ISDS를 철회하고 향후 관련 분쟁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제안했지만, 우리 측은 이를 거부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직후 브리핑에서 “정부는 이번 판정을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이의 신청 절차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 장관은 “론스타가 청구한 금액 대비 4.6%만 인정된 것”이라며 "우리 정부는 론스타가 외환매각 당시 승인심사 과정에서 법규조약 차별 없이 공정·공평하게 대우했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수 의견에 따르면 우리 정부 배상액은 0원”이라면서 특히 "론스타가 청구한 부분 중 액수가 많았던 조세 쟁점에 관해서는 모두 우리 정부가 승소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수의견이 우리 정부의 책임을 전혀 묻지 않은 것을 보면 절차 내에서 끝까지 다퉈볼 만 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은 한 푼도 유출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10년 동안 여러 정부 거치면서 TF 회의 47회 등 국익에 부합하기 위해서 이 사건 소송 대응에 최선을 다해왔다"며 "정부는 이번 중재절차 관련 투명성 제고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관련법령 및 절차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공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법무연구원 연구위원은 "론스타 청구구금액 대비 4.6% 인용은 국제중재 소송에서 법무부가 절대 소홀하지 않게 탄탄하게 소송을 진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120일 이내 이의신청 형태의 항고를 통해 국민의 세금이 나가는 걸 최소화하는 것 또한 법무부의 소임이다"라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론스타 주요 청구 이유 중 하나가 '지연매각'인데 한동훈 장관이 검사 시절 론스타 관련 유 전 대표를 수사해 2008년 징역 5년을 유죄를 받게 한 것이 이번 중재 판정에서 과실상계에 결정적 기여를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설픈 정책 판단이 향후 상상할 수 없는 법적 분쟁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즉흥적이고 단선적인 정책 결정은 절대 지양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판정이다"라고 부연했다.

론스타 쪽 주장의 일부가 인정돼 3천억원 가까운 ‘혈세’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 된 것에 관련자들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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