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IMF(국제통화기금)에서 왔습니다.”
지난 2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을 지낸 이창용 한은 총재가 답답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IMF가 권고하는 최대치에 한참 미달한다는 일각의 지적을 반박하면서다. 긴장감이 돌던 기자간담회장엔 잠시 웃음이 터졌다. 이 총재는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전 세계 9위”라며 “IMF 기준 최대치를 쌓는다면 비용도 크지만 IMF가 찾아와서 하지 말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기자간담회에서는 이 총재의 ‘친절함’이 정점에 달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당분간 0.25%포인트씩 올리는 것이 기조”라고 강조했다. 연내 추가적인 빅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일축하는 발언이었다. ‘당분간이 얼마 동안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3개월 범위로 생각한다”고 했다. 한 시장 관계자는 “연말 연 3% 기준금리를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해석한다”며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예고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가 30일 미국 중앙은행(Fed)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 ‘잭슨홀 회의’에 참석한 뒤 복귀하자마자 한 일은 공보관을 통해 언론에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이 총재는 문자메시지에서 “(회의 결과가) 예상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향후 통화정책 운용 방향에도 변함이 없다”고 했다. 금통위 후 불과 5일 만에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지침)’를 추가로 내놓으면서 잭슨홀 회의 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장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 총재의 자신감 있고 확신에 찬 화법은 그의 이력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는 서울대 교수를 지낸 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 IMF 아·태국장을 거쳐 국내외 네트워크가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이런 네트워크를 활용해 글로벌 경제 변화에 대한 발 빠른 정보를 직접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가 기자간담회에서 “IMF가 오는 10월부터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여러 시나리오를 반영해 발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것도 그런 사례다.
문제는 그다음 말이었다. 이 총재는 “연말 이후에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투자자가 있으면 자기 책임하에 손실을 보든지 이익을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하루 사이 0.2%포인트나 급등하는 등 채권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기대인플레이션을 반드시 꺾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자신의 발언이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 총재가 아직 감을 잡지 못한 느낌”이라며 “실수에 가까운 발언”이라는 정반대 평가도 나왔다.
이 총재가 금통위 전 ‘포토타임’에서 의사봉을 두드려 달라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이번에 올리는 금리는 가짜입니다”라고 농담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왔다. 한 시장 관계자는 “이 총재가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발휘한 것이지만 금통위 의결 전에 ‘진짜’ 금리 인상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기준금리는 시장 참여자에게 공평하게 알려야 한다는 점에서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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