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대 재개발 사업으로 꼽히는 해운대구 ‘우동 3구역’은 올 들어 여섯 차례나 시공사 선정 입찰을 벌였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1~3차 입찰 땐 참여한 건설사가 단 한 곳도 없었고, 4~6차 입찰에는 현대건설만 단독으로 응찰하면서 ‘복수 응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유찰됐다. 한 대형 건설사 정비사업담당 임원은 “건설 자재값이 폭등했는데 조합 측이 제시한 공사비엔 이런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상당수 건설사가 ‘수주했다가는 손해만 볼 수 있다’며 입찰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건설 자재값 급등 여파로 전국의 굵직한 정비사업지에서 시공사를 못 구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아파트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이 늘었는데, 조합 측이 제시하는 공사 단가가 낮아 건설사들이 일감을 마다하는 분위기다. 이로 인해 올 들어 전국적으로 주택 착공 건수도 예년보다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사업 지연으로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것을 우려한 일부 조합은 당초 계획보다 공사비를 대폭 높여 ‘시공사 모시기’에 나서는 등 갑을 관계가 뒤바뀐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치솟은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으로 공사비는 급격히 늘어난 데 비해 분양가 규제로 분양가를 제대로 올리지 못하면서 착공이 밀리거나 중단되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 자재값 개념인 ‘건설용 재료 물가지수’는 지난달 146.47로, 작년 초(108.62)보다 34.8% 뛰었다. 하지만 분양가 산정 기준이 되는 ‘기본형 건축비’는 같은 기간 10.6% 오르는 데 그쳤다. 서울의 주요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은 “공사비가 인상된 만큼 분양가를 올려야 수지가 맞는데, 분양가 상한제 규제 때문에 공사비 상승분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고 불만을 호소하고 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공사비도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주거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서울 재건축·재개발 아파트 13곳의 평균 공사비는 3.3㎡당 578만5000원이었다. 하지만 올해 시공사를 선정한 서초구 ‘아남’ 소규모 재건축 사업과 강남구 ‘선경3차’ 가로주택정비사업 공사비는 3.3㎡당 800만원이 넘는다. 강북에서도 종로구 ‘사직 2구역’ 재개발 사업의 3.3㎡당 공사비가 770만원으로 책정되는 등 공사비가 눈에 띄게 불어나는 추세다.
이미 시공 계약을 맺은 현장에서도 공사비 때문에 갈등을 빚는 사례가 많다. 국내 최대 재건축 아파트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은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증액 갈등 등으로 4월부터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대전 ‘용두동 2구역’ 등도 공사비를 확정하지 못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착공이 늦어지면 각종 이자 비용 등이 증가해 건설사와 조합 모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엔 공사비를 처음부터 높게 책정해 건설사에 ‘러브콜’을 보내는 사업장도 나오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 2구역’ 재개발 조합은 공사비를 3.3㎡당 770만원으로 책정했다. 인근 ‘한남 3구역’ 공사비(598만원)보다 200만원 가까이 높은 금액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분양가 규제 현실화를 통해 공사비 인상분을 분양가에 제대로 반영할 수 있게 해야 민간 재건축·재개발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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