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에 2800억 배상"…한국 정부 6.3조 유출 피했다

입력 2022-08-31 09:43   수정 2022-08-31 16:37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을 두고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론스타와 10년에 걸쳐 진행했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에서 약 2800억원을 배상하라는 최종 판정이 나왔다.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액(약 6조3000억원)의 약 4.6% 규모다. 패소이긴 하나 수조원의 배상금을 지급할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숨을 돌렸다는 평가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판정부는 31일 론스타가 2012년 11월 제기한 중재 신청에 대해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50만달러(약 2800억원)를 배상하라”는 최종 판정을 내놓았다. 론스타가 중재 신청 당시 청구했던 손해배상액은 46억7950만달러(약 6조3000억원)에 달했다.

론스타는 노무현 정부 첫 해인 2003년 1조3834억원을 들여 외환은행(지분 51%)을 인수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6년 HSBC를 상대로 매각을 타진했지만 1년이 넘는 협상 끝에 결국 거래가 무산됐다. HSBC는 2007년 11월 금융위원회에 외환은행 인수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정부는 8개월 후 심사를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사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HSBC는 급변한 경영환경에 고심을 거듭하다 2008년 8월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했다.

론스타는 다시 거래 상대를 찾은 끝에 2012년 1월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을 넘겼다. 매각 가격은 3조9157억원으로 HSBC와 계약했던 60억180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6조원)보다 2조원가량 떨어졌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매각 승인 지연으로 투자이익이 크게 줄었다”며 기나긴 소송전에 돌입했다. 한국 정부는 “론스타가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승인이 지연된 것”이라고 반박해왔다.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의 주장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구한 금액보다 배상 규모가 대폭 줄어든 론스타가 불복 절차를 밟을 가능성도 있다. 항소 절차가 없는 일반 중재와 달리 ICSID에는 불복 절차가 있다. 다만 판정 결과를 뒤집기 어려운 국제 중재사건 특성상 의미있는 반전이 생길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한국 정부도 2018년 6월 이란 다야니 가문이 제기한 ISDS에 대해 “다야니 측에 730억원을 지급하라” ICSID 판정에 반발해 그해 7월 영국 고등법원에 판정 취소소송을 냈지만 이듬해 기각됐다.

한국 정부가 론스타와의 6조3000억원 규모 장기 소송전에서 선방하면서 국민 혈세로 수조원의 배상금을 지급할 처지에 내몰리는 상황은 피하게 됐다. 또 다른 해외 투자자들이 제기한 ISDS에서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모인다.

현재 론스타 사건 외에 한국 정부가 대응 중인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S)은 총 6건이다.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캐피털의 ISDS다. 이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한국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중재를 제기했다. 엘리엇과 메이슨은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국민연금공단을 움직였고, 국민연금이 삼성그룹 오너일가에 유리한 합병비율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엘리엇은 약 7억7000만달러를, 메이슨은 2억달러의 손해배상을 각각 청구했다.

이 가운데 엘리엇 사건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 곧 결론이 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에선 패소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법원이 2019년 8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이 부정청탁이 있었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청와대가 국민연금공단을 움직였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확정지었다. 대법 판결은 엘리엇과 메이슨 측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스위스 기업 쉰들러가 제기한 ISDS는 2018년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와 관련이 있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부당하게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을 했음에도 한국 금융당국이 이를 방치했다”며 2018년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청구한 손해배상금은 약 1억9000만달러다.

개인 투자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도 있다. 한 중국 투자자는 본인 소유의 국내회사 주식에 대해 우리은행이 담보권을 실행한 것에 대해 “국내 법원의 재판절차가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구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한 미국 투자자는 부산시 수영구의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본인이 보유한 부동산이 수용돼 손해를 입었다며 약 6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김진성/오현아/최한종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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