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
오늘은 또 다시, 당신의 가슴속, 속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 그려.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에 쓰라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 김소월(1902~1934) : 평북 구성 태생.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시집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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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일은 시인 김소월이 탄생한 지 120년이 되는 날입니다.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가 1902년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에서 첫울음을 터뜨린 날이지요. 소월의 고향은 봄마다 산꽃이 지천으로 피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일부 발췌)
오순은 의붓어미 밑에서 자랐는데 집이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 아래로 동생이 다섯 명이나 있었으니 더욱 궁핍했죠. 소월이 숙모에게 들은 전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시 ‘접동새’의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였다고 할까요.
소월은 열세 살 때 고향을 떠나 평북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 중학부에 진학했습니다. 거기에서 평생 스승인 안서 김억을 만났죠. 오산에서 소월의 학업성적은 늘 우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열네 살 되던 해 그는 할아버지에 의해 강제결혼을 하게 됐어요. 상대는 할아버지 친구의 손녀인 홍단실이었습니다. 그녀는 소월보다 한두 살 연상이었죠.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비교적 원만했지만 강제결혼인 데다 마음속에 둔 연인이 있었기에 내심 갈등도 없진 않았던 듯합니다. 오순과의 이별은 가슴 아픈 일이었지요. 그러나 소월에게는 주옥같은 사랑 시를 쓰게 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연구자들에 따라 이설(異說)이 있긴 하지만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도 그중 한 편이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 때문에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지만 아직도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에 쓰라린’ 사랑을 잊지 못하는 마음이 시 속에 애잔하게 녹아 있지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며 그녀의 혼을 소리쳐 부르다가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라며 흐느끼는 시인의 비탄이 아프게 들려오는 듯합니다.
평생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고향에서 찌든 생활을 하던 소월은 서른두 살이 되던 1934년 겨울에 아편을 술에 타 마시고 짧은 생을 마감했지요. 그가 죽은 날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그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잊지 못하던 첫사랑에게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한’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를 산산이 부서진 그 이름 앞에 가서야 결국 건넸을까요.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고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었던, 사랑하던 그 사람, 사랑하던 그 사람에게 말이죠.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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