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에 '실망 매물'이 쌓이고 있다. 정부가 오는 2024년까지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마스터플랜(종합계획)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추진 동력에 의구심을 품은 집주인들이 서둘러 매물을 내놓고 있어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오는 8일 5곳 지방자치단체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추진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실망 매물' 증가로 집 값 하락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2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1기 신도시에서 나온 아파트 매매 물량은 총 1만7783건이다. 정부가 지난달 16일 270만 가구 주거 공급 대책을 내놓은 이후 보름 동안에만 1102건(6.60%) 증가했다.
업계에선 올 들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각 지역에서 대출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집 주인들이 아파트를 내놓고 있지만 1기 신도시의 매물 증가 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군포시 금정동·산본동 등 산본 신도시에서 아파트 매매 물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8·16 대책 직전 1408건이던 아파트 매매 물량은 이날 1553건으로 145건(10.29%) 증가했다. 고양시 일산서구·동구 등 일산 신도시에서도 같은 기간 6134건에서 6595건으로 461건(7.51%) 증가했다. 부천시 중동·상동(중동 신도시), 안양시 동안구(평촌 신도시), 성남시 분당구(분당 신도시) 역시 각각 173건(7.02%), 171건(5.69%), 152건(4.13%) 증가했다.
1기 신도시는 올 상반기 윤석열 대통령 당선 후부터 재정비에 대한 기대로 아파트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아파트 호가가 뛰는 사례도 이어졌다. 이 덕분에 금리 인상기에서도 상대적으로 집 값 안정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정부가 8·16 대책에서 오는 2024년까지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겠다고 하면서 내년까지 마스터프랜 수립을 기대했던 주민들의 실망감이 커졌다.
주민들이 하나 둘 씩 아파트 매물을 내놓으면서 집 값 하락세도 커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8월 마지막 주 고양시의 주간 아파트 값 변동률은 마이너스(-)0.11%다. 올 7월 이후 매주 -0.01~0.02% 수준이던 주간 변동율이 8월 중순 이후 하락 폭을 키우고 있다. 올 7월까지 주간 변동률이 플러스(+)를 띠던 성남 분당구 역시 지난달 마지막 주엔 아파트 값이 전주 대비 0.12% 하락했다. 안양(8월 마지막 주 -0.23%)과 부천(-0.13%) 역시 주간 단위 아파트 값 하락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조속한 재정비를 요구하면서 ‘1기 신도시 범재건축연합회’를 발족했다. 지난 1일엔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1기 신도시 특별법 연내 제정과 스터플랜 조기 이행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윤석열 정부의 첫 대규모 주택 공급 대책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관련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포함돼 있지 않고 주민들의 기대보다 마스터플랜 수립 시점이 늦어졌기 때문"이라며 "시장 상황과 맞물려 해당 지역 아파트 값은 한동안 약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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