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9세기 열강들이 세운 건축물 이야기

입력 2022-09-02 16:55   수정 2022-09-02 23:42

약현(藥峴)은 만리동에서 충정로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다. 약초밭이 많아 ‘약전현(藥田峴)’이라고 하다가 ‘약현’으로 줄여 부르며 지명으로 굳어졌다. 1886년 조선과 프랑스 수교 이후 조선교구는 신자가 급증하자 이곳에 성당을 짓기로 한다. 1887년 성당 터를 매입했고 1891년 10월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12월 한국 최초의 가톨릭 성당인 약현성당이 탄생한다. 성당은 1998년 2월 행려자의 방화로 지붕과 내부가 불에 타고, 첨탑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이를 2000년 9월 다시 지었다.

교회당은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벽돌 건물이다. 기술사 이영천은 저서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에서 “높은 첨탑을 가진 고딕양식은 고난도 기술과 많은 공사비를 요구하기에 지혜롭게 절충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번잡스러운 장식이 없고 아담하면서도 장중한 모습”이라고 했다. 약현성당은 박해의 아픔이 서린 서소문 형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영천은 “약현에 성당이 자리 잡은 것은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때 성인 44명을 포함해 모두 98명이 가까운 서소문 형장에서 순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서울에 현존하는 근대 건축을 그 속에 담긴 역사와 함께 톺아본다. 개항과 함께 밀려든 러시아공사관 영국공사관 벨기에영사관 등 외국 공관, 약현성당 명동성당 정동교회 등 수많은 핍박을 이겨내고 자리 잡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세운 건축물들을 조명한다.

저자는 “19세기 후반 서울에 몰려든 열강들은 입지부터 좌향(坐向), 재료, 형상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계산과 뚜렷한 의도를 갖고 각각의 건축물을 지어 올렸다”고 했다. 그는 건축물에 새겨진 가슴 아픈 역사를 살피면서 “이어가야 할 자산은 되살려 빛내고, 타도해야 할 병폐는 말끔하게 도려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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