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추락(원·달러 환율 상승)했다. 미국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강(强)달러, 중국 경기 둔화, 사상 최대 무역적자, 올겨울 액화천연가스(LNG) 대란 우려 등 4중고(苦)에 짓눌려 원화 약세가 장기화하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 7월 한국은행이 사상 첫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을 밟은 뒤에도 원화가치 하락이 두드러지면서 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중국 쓰촨성 청두시가 전날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4일까지 도시를 봉쇄하겠다고 밝힌 것도 원·달러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3월 상하이 봉쇄에 이어 청두까지 봉쇄돼 중국 경제의 타격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제기되면서다. 김승혁 NH선물 이코노미스트는 “가뜩이나 중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도시 봉쇄로 위안화 매도가 확대됐다”며 “위안화 약세는 대중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원화 약세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한은은 강달러, 위안화 약세와 함께 무역수지 적자를 원화 약세의 한 요인으로 꼽았다. 지난달 무역적자는 94억7000만달러로 무역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56년 이후 66년 만의 최대였다. 올 들어 8월까지 무역적자는 247억달러로 역시 66년 만에 가장 컸다.
과거 원·달러 환율이 한 달 이상 1300원을 넘은 건 △외환위기(1997년) △닷컴 버블 붕괴(2001년)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등 단 세 번뿐으로 모두 ‘위기’가 고조됐을 때다. 물론 현재 고(高)환율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 때문이 아니라 세계적인 강달러 영향이 크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368억달러로 2001년 1028억달러의 네 배나 된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입 비율은 2000년대 초반 65.6%에서 지난해 84.8%로 높아졌다. 그만큼 대외 변수에 더 취약해진 것이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크다”며 “최근 가파른 원화 약세는 글로벌 달러 강세 요인 외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취약성도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물가 압박은 더 커지게 됐다. 이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은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리는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머리를 맞댄다. 이번 회의에서는 고환율·고물가, 무역수지 적자 확대, 에너지 수급 불안 등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할 전망이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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