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걸려있는 이 그림을 보시죠. 뭉개진 형태,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조, 희끄무레한 붓질…. 보고 있으면 왠지 불안해지고 기분이 나빠집니다.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앉아있는 인물’이라는 작품인데요. 현대미술이 아무리 이해하기 어렵고 ‘취존’(취향 존중)이 필요한 영역이라지만, 집 거실 벽에 걸어두고 싶은 작품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이 작품, 경매에서 4496만5000달러(약 611억5240만원)에 팔린 그림입니다. 그것도 2014년에 말입니다. 나날이 물가가 오르고 미술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지금 판매한다면 아마 가격은 1000억원을 우습게 넘길 겁니다.
이 그림을 비롯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 8점이 지금 한국에 와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매사 크리스티가 서울 청담동 분더샵에서 연 전시 ‘육체와 영혼: 베이컨/게니’ 전시를 통해서인데요. 그림 한 점당 평균 가격이 300억원을 넘으니, 전시장에 걸린 그림값은 총 2400억원을 가볍게 넘겠지요. 그야말로 블록버스터급 전시고, 이런 규모의 베이컨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입니다. 그의 그림을 좋아하든 아니든 일단 한 번 가볼 만한 전시인 건 틀림이 없죠.
그런데 이 전시, 오늘(3일)부터 5일까지 딱 3일만 열립니다. 사전 예약을 해야 볼 수 있는데 벌써 2주 전에 정해진 인원 1000명이 다 찼고요. 아쉬운 일이죠. 그래서 전시장에서 만난 크리스티 관계자에게 부탁했습니다. “여기 못 오시는 분들에게 기사로 전시를 보여드릴 테니 작품 사진을 좀 보내달라”고요. 물론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시는 질문, “왜 이렇게 비싼가요?”도 물어봤습니다. 오늘 ‘그때 그 사람들’은 이번 전시작들과 함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삶,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다룹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작품은 한 점당 가격이 기본 수백억원을 호가하는데, 1000억원을 넘는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201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4240만달러(약 1937억원)에 낙찰되며 당시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던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유독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그의 이름값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라고 하면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했던 영국 철학자(1561~1626)를 떠올리는 분들이 더 많죠.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림이 지나치게 어둡고 무섭기 때문’이라는 게 미술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정윤아 크리스티 시니어 스페셜리스트는 “베이컨의 그림은 강렬하고 원초적인 화풍으로 죽음과 고통 등 부정적인 요소를 여과없이 드러내는데, 아시아권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그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베이컨의 그림에서 넘쳐 흐르는 부정적인 에너지는 그의 불행한 삶에서 나왔습니다. 1909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고 꾸미는 걸 좋아했습니다. 곧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고요. 참전용사 출신이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아버지는 이걸 고치겠다고 하인들한테 채찍으로 베이컨을 때리게 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오히려 베이컨에게 성선호장애(성도착증)만 심어줬습니다. 16살 때 집에서 쫓겨난 뒤 그는 본격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시작했죠.
한참을 안정된 직업 없이 떠돌던 베이컨은 20대 후반이 돼서야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습니다. 미대는커녕 제대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조차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인지 초기 그의 작품들은 혹평에 시달렸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자원봉사 대원으로 일하면서 목격한 수많은 죽음은 베이컨의 성격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1944년 전시회가 소위 ‘대박’이 나면서 베이컨은 본격적으로 화가로서 성공의 길을 걷습니다. 그의 명성은 끝없이 높아졌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하지만 베이컨은 항상 외로움에 시달렸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앓던 천식에 더해 알코올 중독이 몸과 마음을 좀먹었지요. 베이컨이 사랑하는 친구들과 연인들은 그의 곁을 하나둘씩 떠나갔고요. 1992년 심장마비가 온 그는 82세를 일기로 사망합니다.
전시장에서 만난 정윤아 크리스티 시니어 스페셜리스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습니다. “확실히 엄청나게 인상이 강렬한 그림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비쌀 일인가요?”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미술 관련 일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좋은 그림은 어떤 그림인지 항상 스스로 묻곤 합니다. 제 결론은 이겁니다. ①독창성이 있는 그림. ②전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혁신을 일궈낸 그림이 명작이라는 겁니다. 베이컨의 작품은 이 조건들을 만족합니다.”
쉽게 풀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독창적인 그림이란 뭘까요. 명확히 정의하긴 쉽지 않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나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이 독창적이라는 데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고흐 그림에 있는 소용돌이 무늬와 강렬한 색채, 피카소 그림의 제멋대로 붙어있는 이목구비 등은 척 보면 작가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로 특징적이지요. 베이컨의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베이컨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어둡고 암울하고 섬뜩한 분위기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일등 공신이 뭉개진 듯한 얼굴과 인체 표현이죠. 마치 찢어진 고깃덩어리처럼 사람을 표현해 놨으니까요. 이는 언제나 죽음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하는 베이컨식 표현법입니다. 그는 생전 “고통받는 모든 인간은 고기다” “내가 죽으면 나를 비닐봉지에 넣어 시궁창에 던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인생은 고통이며 삶은 비참하며 무의미하다는 얘기죠. 그의 생각에 공감하든 그렇지 않든, 화풍이 독창적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 다음, “전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혁신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독창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그린 낙서도 독창적일 수 있으니까요. 미술의 역사에 뿌리를 두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좋은 그림이라는 거죠.
이 그림을 보시죠.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서양 미술의 걸작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입니다. 베이컨은 이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교황은 가톨릭을 상징하는 존재이자 아버지(pope). 자신을 채찍으로 때리게 시켰던 아버지, 동성애를 배척하는 사회 분위기 등 자신을 괴롭게 한 많은 것들이 떠올랐겠죠. 그래서인지 그는 벨라스케스의 교황 그림을 ‘자기 방식으로’ 연달아 그려내기 시작합니다. 그를 대표하는 ‘교황 연작’입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이 ‘꽂힌’ 것들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했습니다. 기독교적 요소는 물론 그리스·로마 신화와 관련된 상징들도 그림에 여럿 넣었고요.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그림, ‘절규’를 비롯한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 러시아의 명작 영화 ‘전함 포템킨’ 등 미술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서양 문화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림에 녹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서양 문화의 유산들을 보고 자란 서구인들은 베이컨의 그림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낯설게 보게 된’ 거지요. 기존의 질서나 권위를 뒤집어 엎는 데 통쾌함을 느낀 사람들도 많았고요. 문화권이 다른 우리가 베이컨의 그림에서 감동을 덜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죽음이라는 원초적인 주제를 독창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했죠. 정 스페셜리스트는 “유럽인들은 죽음과 고통이라는 주제에 깊이 공감하는 경향이 있다”며 “옛날부터 전쟁이 잦았고, 세계 1·2차 세계대전도 직접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걸작 ‘이른 아침, 생트 막심’(EARLY MORNING, SAINTE-MAXIME)(1969)도 볼 수 있습니다. 다음 달 런던 경매 프리뷰의 일환인데요, 프리즈 서울을 보기 위해 전세계 미술계 관계자들이 서울에 왔으니, 가을 경매 대표작을 여기서 선보이겠다는 거죠. 1988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경매에 등장한 뒤 이번에 처음 나왔고요. 추정가는 700만~1000만 파운드(약 109억~156억원)입니다. 베이컨의 그림들을 주욱 보느라 힘드셨을 마음을 이 그림으로 조금 달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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