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근처에 동종개업 했더니…"위자료 5000만원 내놔라"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2-09-04 07:09   수정 2022-09-04 19:23



근로자가 퇴직 이후 주변에 경쟁업체를 차리지 않는다는 '경업금지 약정'을 체결했어도, 기간이 지나치게 길고, 보상이나 반대 급부가 없는 계약이라면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주요 기밀이나 영업비밀 등을 취급하는 직원의 퇴사를 관리하고 경업금지 약정을 맺을 경우 판결에 따른 세심한 조항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문가들의 의견이다.
○경쟁업체 차리고 고객정보 활용한 웨딩플래너
대구지방법원 제14민사부는 지난 7월 대구의 웨딩컨설팅 업체 B사가 전 직원인 웨딩플래너 A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웨딩플래너로 일해오던 A는 2014년경 B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기본활동비 90만원 및 성과 수수료(스드메 30%, 혼수 30%, 기타 50%로 구성)를 지급받는 업무 위탁 계약이었다.

회사는 계약 하면서 A에 경업금지 약정 체결도 함께 요구했다. 퇴사 이후 3년간 대구 내에서 웨딩컨설팅과 관련한 고객 유치나 영업을 해서는 안되고, 고객 정보를 반납해야 하며, 고객 정보를 이용해 SNS 등에 광고, 사진 및 동영상 게재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던 중 A는 2021년 3월 퇴사를 결정하고 대구 내에 경쟁 업체를 차렸다. 이에 B사는 A에 경업금지 약정 준수와 영업비밀 침해를 중단할 때까지 하루 100만원을 지급하되, 위자료 5000만원도 함께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업비밀 침해행위 여부를 묻지 않고 일률적으로 3년간 경업금지를 하는 것은 과도한 부담"이라며 회사의 청구를 기각하고 해당 계약을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사의 고객정보 등 영업비밀이 보호 가치가 덜하다고 봤다. 법원은 "고객 DB의 고객들은 이미 예식이 완료된 상태라 고객정보가 영업비밀 측면에서 보호 이익이 크지 않다"며 "A는 B사로부터 고객 정보만 제공 받았을 뿐 과거부터 동종업계에서 종사해오며 자연스럽게 노하우나 영업기법을 터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다년간 웨딩컨설팅업에만 종사해온 A에 3년간 업을 금지하면 생계에 큰 영향을 미치며, B사도 별다른 반대 급부 없이 사실상 경쟁자를 제거하는 효과를 누리게 돼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 촉진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A는 자신이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경업금지약정의 효력이 없다고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A의 근무형태를 고려해 근로자는 맞다고 판단했다.

한편 우리 대법원은 경업금지 약정을 체결했어도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면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본다. 특히 △사용자의 이익이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 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 △대가의 제공 유무 △퇴직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대법2009다82244).

바꿔말하면 △경업금지 기간이 너무 길거나 △금지 지역이 너무 넓거나 △근로자에게 충분한 반대 급부 없이 의무만 부과하는 조항은 무효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정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법원은 통상 금지기간이 1년을 넘기면 길다고 판단하는 경향"이라고 말했다.
○"경쟁업체 차릴 거면 5천만원 내놔" 약정…법원 "무효"
한편 지난 5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D 학원이 전 트레이너 직원 C를 상대로 제기한 약정금 청구 소송에서 C의 손을 들어줬다 .

C는 2019년부터 약 1년 9개월간 서울 노량진에서 경찰, 수방, 해경 등 공무원 시험준비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D체력학원에서 일해왔다.

2020년 12월 C는 퇴직과 동시에 D학원 '2관'을 운영하되, 매달 600만원씩을 수수료로 D에게 지급하는 위탁운영계약을 체결했다. 동시에 △10년 동안 동작구에서 동종 업종 운영을 해서는 안되며 △만약 상호 합의를 거쳐 운영을 하게 된다면 매달 프랜차이즈 비용으로 100만원을 지급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위약금 5000만원을 지급하는 경업금지 약정을 체결했다.

2관을 운영하다가 손해가 커지던 C는 결국 D학원과 위탁운영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동작구에 다른 체력학원을 열어 영업을 했다.

D학원은 C에게 약정금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C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일정한 거리 제한도 없이 (고객인) 공무원 준비생들이 다수 밀집해 모여있는 노량진 일대에 체력 학원 운영을 운영하려면 프랜차이즈로 하도록 강제하고 있어 지역적 제한이 너무 넓고, 그 기간도 10년으로 지나치다 길다"라며 "D학원은 C에게 아무런 반대 급부를 주지 않은 것도 급부에 불균형이 있다"고 꼬집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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