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행복은 상관없다는 주장에 단골 뒷받침 근거로 등장하는 연구 결과가 하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1926~)은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30개 국가의 행복도를 연구했다. 그 결과 이스털린은 일정 수준까지는 행복과 소득이 비례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은 소득이 증가하더라도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얻게 됐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깨뜨리는 연구였다. 이 연구 결과는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불리며 지금까지도 돈은 행복에 중요 요소가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돈과 행복이 중요하지 않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많이 언급되는 나라도 하나 있다. 바로 부탄이다. 부탄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유명한 곳인지 아는 사람들은 잘 없다. 그런데도 인도와 중국 사이의 작은 나라인 부탄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유는 바로 ‘행복 국가’ 조사에서 1위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영국의 신경제재단(NEF: New Economics Foundation)에서 실시한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HPI: Happy Planet Index)가 높은 나라 조사 결과에서 부탄은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51위 정도인 부탄의 1위 소식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과 반대되는 조사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스털린의 역설이나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을 보았을 때 정말로 돈은 행복과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스털린의 역설과 부탄의 사례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그럼 우리는 이 두 근거에서 ‘돈과 행복은 서로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먼저 이스털린의 역설의 경우 ‘일정 수준’이라는 기준 이후에는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지만 ‘일정 수준’까지는 소득과 행복도가 비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 ‘일정 수준’(원화 연봉 약 8000만원) 아래에 해당한다.(2023년도 기준 중위소득 1인 가구 연봉 2334만원)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은 행복과 소득이 비례하는 구간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과 행복이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의 경우 2016년 NEF의 국가별 행복지수(HPI) 조사에서 56위로 추락했다.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며 도시와 농촌 간의 소득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행복도가 곤두박질친 것이다. 결국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며 행복도가 낮아진 것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시작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돈은 결코 행복의 충분조건이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돈만 있다고 무조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해지는 데 돈이 필요 없는 것도 아니다. 삶에서의 꽤 많은 불행이 돈 때문에 생겨난다. 그리고 불행을 가져다주는 요인이 많은 삶은 행복해지기 어렵다. 돈이 행복을 무조건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에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박할 수도 없다. 돈은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돈에 밝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행복을 위한 여러 조건 중 하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스털린의 역설에서 말하는 ‘일정 수준’ 이후에도 대비를 해둬야 한다. 돈뿐만 아니라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마음가짐, 성취감, 가족, 사랑, 우정 등 행복을 위해 필요한 다른 여러 조건도 늘 신경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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