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보다는 베테랑이란 수식어를 더 좋아해요. 10년은 더 뛸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꼭 보여드릴게요.”
지은희(36)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한국 여자골퍼들의 ‘맏언니’다. 미국 진출 16년차인 그는 지난 5월 LPGA투어 뱅크 오브 호프 매치플레이에서 우승하며 투어 통산 6승과 함께 ‘한국 여자선수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한국 골프의 ‘전설’ 박세리(45)를 보고 골프를 시작한 ‘세리 키즈’지만 이제는 그 자신이 한국 여자골프의 역사를 새로 쓰는 주인공이 됐다.
지난 2일 경기 가평에서 지은희를 만났다. 지난달 25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메이저대회 한화 클래식에 출전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스폰서 대회에서 1타 차 커트 탈락해 아쉬움이 컸지만 이제 다 털어냈다”며 “하반기 LPGA투어 대회를 위해 샷감을 재정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롱런의 비결은 강한 체력이다. 수상스키 감독인 아버지 덕에 어릴 때부터 근력 운동을 많이 한 게 도움이 됐다. “수상스키는 하체, 코어, 팔을 모두 쓰는 전신운동이에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어릴 때부터 근력을 탄탄하게 길렀고 그 덕에 부상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시즌이 끝나면 근육을 탄탄하게 재정비합니다.”
지은희는 올 시즌 3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36세17일로 LPGA투어 한국인 최고령 우승 기록도 새로 썼다. 박희영(35)이 2020년 ISPS한다오픈에서 세운 기록(32세8개월17일)을 3년4개월이나 뒤로 물렸다.
그는 부활의 비결로 “지난해의 부진”을 꼽았다. 지난해 22개 대회에 출전해 준우승 한 번을 포함해 두 차례 톱10에 들었지만, 상위권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데뷔 때부터 구사해온 페이드 구질을 드로로 바꾸는 과정에서 샷의 정확도가 떨어진 탓이었다. 페어웨이를 세 번 정도만 지킨 라운드가 있었을 정도다.
“어린 선수들에 비해 힘이 달리다 보니 힘을 덜 들이고도 멀리 치기 위해 드로 구질로 바꿨어요. 타깃이 바뀌니 코스에 대한 감각이 달라지고, 신경 써야 할 게 확 바뀌다 보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지은희는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미스 샷을 쇼트 게임으로 커버하는 연습을 반복한 덕분에 리커버리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난 5월 뱅크오브호프 매치플레이는 그걸 보여주는 무대였다. 결승전에서 14살 어린 후루에 아야카(22·일본)와 맞붙은 지은희는 여러 차례 미스 샷을 했지만 그린 주변 플레이와 퍼트로 만회했다.
“모든 홀의 성적이 합산되는 스트로크 플레이에서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1 대 1로 맞붙는 매치플레이는 무조건 공격적이어야 하죠. 그래선지 매치플레이에 나서면 일단 자신감이 생깁니다.”
지은희는 골프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는 “골프가 안 되면 ‘지금 잘 안될 뿐이야. 조금 있으면 좋아질 거야’란 긍정적인 생각으로 버텼다”며 “마음은 편하게 먹되 꾸준히 샷을 개선하는 등 몸은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은희에게 골프선수로서의 꿈을 물었더니 이런 답을 내놨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오래오래 현역으로 활동하는 겁니다. 올 시즌 7개 대회에 더 출전할 생각이에요. 매치플레이에서 우승했으니 스트로크 방식 대회에서도 우승하고 싶어요. 자신 있습니다.” 36세 베테랑 골퍼는 이제 막 골프를 시작한 청년처럼 해맑게 웃었다.
가평=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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