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마저도 옛말이 돼가고 있다. 차례 음식을 사서 올리는 집이 적지 않다. 주문만 하면 차례 음식 일체를 가족 규모에 따라 서울·경기, 경상, 전라 등 지역별 특성에 맞춰 배달해주는 곳도 많다. 아예 제사와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도 늘고 있다. 차례상 차리기가 지나치게 번거롭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유교식 제사가 예법으로 정착한 것은 중국 송대 유학자 주희의 학설을 모아서 편찬한 <주자가례(朱子家禮)>가 고려 말 이후 전해지면서다. 제사나 차례상에 30여 가지 제물을 올리는 지금보다 <주자가례>의 제사상 차림은 간소하다. 식초, 간장을 빼면 상에 올린 음식은 밥과 국, 국수, 고기, 구이(炙), 생선, 떡, 육포, 나물, 육장, 김치, 과일 등 17가지다. 고기, 생선 등의 구체적인 종류나 재료는 명시하지 않았다.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紅東白西) 등의 진설법은 후대에 형성된 습속이다.
더욱이 기제사와 달리 명절 차례상은 계절 과일과 술, 차만 올리는 정도로 간소했다. 지금도 퇴계 종가에서는 명절 차례상에 술과 전, 포, 과일, 떡국(설)이나 송편(추석) 정도만 올린다. 다른 종가들도 마찬가지다. 조상께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는 기제사와 달리 명절 차례는 간단한 음식과 함께 차나 술을 올리는 것인데, 기제사나 다름없이 잘못 지내온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성균관이 송편, 고기구이(炙), 김치, 과일, 나물, 술잔 등 상차림이 9가지가 넘지 않는 ‘추석 차례상 표준안’을 내놓았다. 기름에 굽고 튀기는 음식은 예법에 어긋난다며 뺐다. 성균관의 차례상 간소화는 허례허식에 치우쳤던 제사문화에 대한 반성이자, 쇠퇴하는 제사문화를 지키려는 몸부림으로도 읽힌다. 조상님 모시는 데 음식 가짓수가 대수인가. 공자는 <논어> ‘팔일’ 편에서 “정성이 있으면 귀신(조상)이 있고 정성이 없으면 귀신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