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 물 새서 지원금 받았는데…집주인 "절반 내놔야"

입력 2022-09-09 08:00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 거주하는 김모씨는 지난달 폭우로 집이 침수되는 피해를 겪었다. 최근 침수 피해를 겨우 수습한 그에게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집주인이 재난지원금을 나눠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거주하면서 폭우로 피해를 당한 사람한테 주는 지원금이지 않냐"며 "가재도구도 모두 망가졌고 집이 정리될 때까지 임시 거처까지 구하느라 금전적인 부담이 컸는데, 집주인이 재난지원금 절반을 내놓거나 도배·장판 비용을 부담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센터에서도 집주인과 합의해 반반씩 나누라고 한다"며 불쾌감을 토로했다.

9일 서울시 전월세보증금 지원센터에 따르면 임차인이 침수 피해가 발생한 집에 계속 실거주한다면 재난지원금은 임차인의 몫이다. 재난지원금은 집주인이 아닌 실거주자에게 지급되기 때문이다.

다만 세부적으로 분쟁의 여지는 있다. 최근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임차인과 임대인 간 갈등이 늘어나며 관련 상담도 급증했다. 서울시 전월세보증금 지원센터는 변호사 등 전문 인력 등을 지원해 전화로 주택임대차 관련 상담과 분쟁조정, 대출 상담 등을 제공하고 있다.

센터에 따르면 집수리는 기본적으로 임대인의 의무다.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 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한다. 균열이나 누수 등 주택 구조물의 하자는 집주인이 수리해야 하며, 하자로 인해 세면대, 싱크대, 옵션에 포함된 가전 등 집수리가 필요해졌다면 이 또한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

임차인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민법 제634조는 '임차물의 수리가 필요하거나 임차물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자가 있는 때에 임차인은 지체 없이 임대인에게 이를 통지해야 한다. 그러나 임대인이 이미 알았다면 그러지 않는다'고 임차인의 통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집에 하자가 있다면 임대인에게 즉시 알려야 하며, 그러지 않을 경우 수리 책임이 임차인에게 돌아간다는 의미다. 또한 민법 제309조, 민법 제374조 등은 임차인에게 통상적인 관리를 수행할 의무를 부여한다.

따라서 폭우 피해가 주택 구조물 하자에 따라 발생했고, 임차인이 통상적인 관리 책임을 다했다면 수리 의무는 집주인이 짊어져야 한다. 재난지원금을 임대인과 나눌 법적 근거도 없다는 것이 센터의 설명이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자연재난 구호 및 복구 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주택 침수 피해 등을 본 이재민에게 실거주 가구당 200만원을 지원했다. 실거주하지 않는 임대인에게는 지급하지 않는다.

센터 관계자는 "피해가 발생한 집에 계속 거주한다면 재난지원금을 임대인과 나눌 근거는 없다"면서도 "임대인과 분쟁이 발생하면 빠른 일상 회복에도 차질을 빚기에 재난지원금을 나눠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침수된 집은 도배와 장판을 바꿔야 하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과 부주의 등 인재가 결합한 경우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판례도 있다"며 "어디까지가 천재이고 어디까지가 인재인지 불분명하기에 재판에서도 책임을 반으로 나누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TV, 냉장고, 가구 등 가재도구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면 임대인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주택 피해 복구 책임은 임대인에게 있지만, 가구나 가전제품 등 가재도구 피해까지는 책임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기존 주택에 누수 등의 하자가 있었고, 임차인이 이에 대한 보수를 요구했지만, 임대인이 응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면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한편 재난지원금은 1995년 집중호우와 태풍 등 자연재난에 입은 피해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됐다. 주택이 침수된 경우 재난지원금으로 100만원을 지급했지만, 2020년 지급액이 2배 상향되면서 현재는 주택 침수에 200만원이 지급된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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