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들어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들이지 못하는 '역(逆)전세난'이 잦아지고 있다. 전세계약갱신청구권과 상대임대인제도 시행으로 갈아타기를 하는 세입자들이 줄어들면서다. 전세 대출 금리마저 치솟는 바람에 전셋집을 찾는 실수요자들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일선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에선 "작년까진 전셋집이 없어 오히려 집주인이 큰소리쳤다면 지금은 세입자들이 되려 집주인들에게 조건을 제시한다"고 했다.
10일 서울 일대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애타게 찾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집주인들은 세입자를 구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판단해 수천만원의 전셋값을 내려주는 식으로 세입자를 붙잡고 있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단지 내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전셋값 상승 등으로 굳이 이 지역에 있을 필요 없는 신혼부부나 장년층이 인근 위례나 멀게는 경기도 성남까지 나가는 경우가 있다"며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않고 이사를 가다보니 집주인들이 수천만원의 전셋값을 낮추기도 한다"고 말했다.
세입자를 붙잡아두기 위해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겠다'는 확답을 받으려는 집주인도 있다.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전세계약갱신청구권은 전세계약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세입자가 행사하겠다고 통보하는 게 보통인데, 최근엔 집주인들이 먼저 세입자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며 "갱신청구권을 써서 2년을 더 살겠다는 계약을 작성해 확답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시장에 전세수요가 줄어들고 전세물건이 많아진 이유는 전세계약갱신청구권과 상생임대인제도 등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전세시장으로 쏟아져야 할 세입자들이 기존 집에 머무르게 되면서 시장에 자연스럽게 매물이 쌓이고 있다.
기준금리가 빠르게 치솟으면서 전세보다는 월세매물을 찾는 수요가 늘어난 것도 이유다. 전세대출 이자가 급등하면서 이자가 부담되는 세입자들이 전세보다는 월세를 찾고 있다. 때문에 고가의 전세 매물은 쌓이고 있다.
서초구의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시장에서 전세 매물 소진이 더딘 것이 사실"이라며 "당분간 금리가 더 오른다고 하는데 전세를 찾는 실수요자들이 더 줄어들지 않겠나"라고 귀띔했다.
대규모 가구수가 입주하는 입주장(場)에서도 이런 현상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지어진 '래미안 엘리니티'는 1048가구로 이달 입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세입자를 찾는데 난항을 겪고 있다. 관악구 신림동 '힐스테이트뉴포레'(1143가구)도 마찬가지 한꺼번에 떨어진 '공급 폭탄'에 역전세난이 지속되고 있다.
용두동에 있는 D 공인 중개 관계자는 "전세 문의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가격을 조정해달라고 요구하는 세입자들이 많다"며 "집주인들은 입주지정기간 내에 세입자를 맞춰야 지연이자를 내지 않다보니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부동산 정보제공 앱(응용프로그램)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6504건 한 달 전(3만1671건)보다 15.26% 증가했다. 1년 전(2만3306건)과 비교하면 56.62% 늘었다. 전세 매물이 시장에 쌓여있는 것이다.
전세 물량이 늘어나면서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9월 첫째 주(5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1% 내렸다. 전주보다 낙폭을 더 키웠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1월 마지막 주(31일) 이후 32주 연속 내림세다. 지난 5월과 6월 보합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상승 반전하진 못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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