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미국서 온 며느리의 추석

입력 2022-09-08 17:01   수정 2022-09-08 23:58

폭풍우가 지난 후라서인지 아침 하늘이 유난히 맑고 상쾌하다. 8월의 폭우와 수해, 태풍 힌남노로 인한 풍수 피해로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지냈다. 유난히 이른 추석이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대대로 내려온 천주교 집안이라 제사와 차례가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추석은 말 그대로 많은 음식이 있는 풍성한 명절이었고 맘껏 뛰며 놀았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이민 후 20여 년을 미국에서 사는 동안에는 추석이 주말이면 식구들이 함께 위령 기도를 드린 다음 한인 성당으로 미사를 가기도 했지만 추석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았다.

거의 마흔이 돼 귀국한 큰며느리에게 시아버님께서 다짐받으신 것은 제사를 지내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조상을 위한 예식을 지내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그러겠다고 약속드렸다. 그 후 제사를 지내다 보니 천주교 교리에 반하는 요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제사와 차례는 집안에 내려오는 방식대로 지내고 있다.

첫 몇 년 동안은 어머니를 돕기만 했다. 그 시절 남편은 추석 명절 중 하루는 당직으로 출근해야 했다. 나 혼자 아픈 아이를 데리고 추석 차량 정체를 뚫고 시댁에 내려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차례가 끝나면 길 막힌다고 서두르는 남편 덕분에 마무리는 동서에게 맡기고 서울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서도 불평을 많이 했다. 특히 쌀 한 말을 송편으로 빚느라 손이 다 오그라졌다고 심하게 불평했나 보다. 송편은 다음해부터 반으로 줄었고, 언제부터인가 떡집에서 사 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내가 추석 장을 봐서 일찍 내려갔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제사를 서울로 가져왔다. 항상 뒷마무리를 해야 했던 동서도 친정 방문이 가능하도록 규칙을 세웠고 동서들과 차례상 품목을 정해 배정했다. 적어도 어머니 계신 동안은 이렇게 유지하자고 약속했다. 온 식구 세 끼 식사 준비하는 것이 부담이기는 했지만 익숙해졌고, 조카들이 커가면서 제법 도움이 되기도 했다. 차례 준비가 끝나고 사촌끼리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명절의 추억이 바뀌기 시작했다. 정부 지침을 지켜보면서 인원수를 초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올해는 식구 중 확진자가 나와, 지난주부터 송편을 챙기시는 어머니도 못 모시고 우리 가족만 조촐하게 지내는 더 작은 추석이 될 것 같다. 차례상의 가짓수도 줄여볼 계획이다. 추석 명절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바뀌기도 하지만 추석을 맞고 지내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올 추석에 식구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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