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렸더니, 꼬불꼬불한 숲길 끝에 터를 잡은 한 골프장에 다다랐다. 정문이 가까워지자 한국의 다보탑을 꼭 닮은 석탑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있는 그늘집은 한옥 팔각정 모양이었다. 골프장 식당의 대표 메뉴는 곰탕과 냉면.고마CC(파71·7065야드)는 소문 그대로였다. “이곳에서 한나절을 보내면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것”이라더니,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변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저그런 골프장이 아니라 2017년부터 3년 연속 ‘일본 100대 골프장’(일본 골프다이제스트)으로 선정된 명문 코스가 한국식이라니 반가운 마음부터 들었다.
출범 42년(대회는 38회)을 맞은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메이저대회 신한동해오픈(총상금 14억원)이 사상 첫 ‘해외 나들이’ 장소로 이곳을 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8일 개막한 이 대회는 코리안투어와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아시안투어 등 3개 투어의 대표 선수 40명이 출전했다.이 대회 타이틀 스폰서인 신한금융그룹이 일본에서 대회를 연 것과 골프장을 고마CC로 정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키워드는 ‘고(故)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과 ‘신한금융그룹 창립 40주년’이다.
신한금융그룹은 이 명예회장 등 재일동포들의 자금을 종잣돈 삼아 출범한 회사다. 1981년 이 골프대회를 만든 사람도 이 명예회장 등 일본 간사이 지방의 재일동포 기업인들이다. 당시 ‘불모지’였던 한국의 골프시장을 키우는 데 보탬이 되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총상금 1500만원 규모의 ‘동해오픈’은 한국에서 가장 상금이 많은 골프대회였다.
고마CC를 만든 사람도 이 명예회장이다. 15세에 오사카로 건너간 뒤 오사카흥은(大阪興銀)이란 신용조합을 설립해 큰돈을 번 이 명예회장은 재일동포 사업가들이 뿌리 깊은 차별 탓에 인맥을 쌓는 데 필요한 골프장 회원권을 구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고려(高麗)’의 일본어 발음인 고마란 이름의 골프장을 건립했다. 설계는 당대 최고 골퍼이던 게리 플레이어에게 맡겼다.
그러고는 바로 이 골프장에서 동해오픈 창설을 결의했다. 대회 이름을 동해오픈으로 지은 건 일본에서 조국을 바라보려면 동해 쪽을 향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동해는 조국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8회까지 재일동포 사업가들의 후원으로 운영됐던 이 대회는 1989년 9회부터 신한은행이 타이틀스폰서를 맡으며 ‘신한동해오픈’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신한금융 창립 40주년을 맞아 신한금융의 뿌리이자 신한동해오픈 창설을 결의한 장소에서 대회를 여는 게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고마CC는 재일동포들의 정신이 담긴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열린 1라운드에서는 캐나다 동포 이태훈(22)이 보기 없이 버디만 9개 잡아내며 9언더파 62타를 쳐 단독 선두에 올랐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시우(27)는 버디 7개, 보기 1개로 6언더파 65타를 쳐 공동 4위로 경기를 마쳤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페어웨이를 지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2017년 이 대회 우승자인 이태훈은 9언더파 62타를 쳐 코스레코드를 세웠다. 그는 “2017년 이 대회에서 우승해 좋은 기억이 많다”며 “코스 컨디션도 좋고 그린스피드도 나와 딱 맞았다. 노보기 플레이를 펼친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이번 대회에서 타이틀 방어와 코리안투어 3주 연속 우승의 대기록에 도전하는 서요섭(26)은 이날 2언더파로 경기를 마쳤다. 아시안투어 4승의 시브 카푸르(40·인도), 일본투어 7승이자 2018년 일본투어 상금왕 슈고 이마히라(30·일본)와 같은 조에서 경기한 서요섭은 이날 전반에 보기 없이 버디만 4개 잡았다. 하지만 후반 4번홀(파4)에서 티샷 OB로 더블보기를 기록했다.
나라(일본)=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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