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20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허위 발언을 했다는 것이 기소의 주요 골자입니다. 이 대표는 이번 기소로 또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는 앞서 2018년 ‘친형 강제 정신병원 입원 의혹’과 관련해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최종 무죄 판단을 받은 바 있습니다.
문제는 이번 기소가 시작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이 대표는 이번 선거법 위반 혐의 외에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쌍방울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돼 있습니다. 앞으로 이에 대한 추가 기소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그 때문에 이에 대한 이 대표 측의 반격과 방어 태세도 한층 더 견고해질 전망입니다.
“허위사실을 적극적?지속적으로 말했다”
이번 기소는 공소시효 만료(9월 9일)를 하루 앞두고 이뤄졌습니다. 이 대표는 작년 12월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대장동 개발 핵심 관계자 중 한 명인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 "하위 직원이라 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는 등의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를 받습니다. 이와 함께 작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수사를 진행한 검찰 측은 이에 대해 충분한 자료를 확보했으며 혐의 입증에 자신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전인 변호사 시절부터 김 전 처장을 알았다는 것이죠. 검찰 관계자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골프도 같이 친 것으로 파악했다”며 “대장동 사업 관련 대면보고도 여러 차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측은 김 전 처장 사망 후 이 대표가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 허위 발언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의적인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 대목에서 과거 이 대표의 대법 선고가 떠오릅니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TV 토론회에서 ‘친형 강제 정신병원 입원 의혹’이 제기되자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한 사건입니다. 이를 둘러싼 법정 공방 끝에 이 대표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습니다. 대법원은 당시 발언을 허위사실 공표로 해석할 경우, 민주주의의 중요 원칙인 표현의 자유 보장을 법이 제한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파기환송 의견을 낸 김명수 대법원장은 당시 이같이 설명했습니다.
“토론회의 주제나 맥락과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허위 사실을 드러내어 알리려는 의도에서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표명한 것이 아닌 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 상대방의 공격적 질문에 방어하거나, 일부 부정확하고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을 했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할 수는 없다.”
즉,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법 위반 혐의에도 위 대법 판례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일까요. 검찰 측은 “사안 자체가 다르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대법원판결은 토론의 과정에서 즉흥 발언한 것이다. 김 전 처장 관련 허위사실은 방송에 출연해서 인터뷰하면서 적극적 지속해서 말한 것이다. 토론회가 아니라 방송 이후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언한 것이기 때문에 사안 자체가 다르다”고 밝혔습니다.
전쟁의 서막
이 대표가 8·28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당권을 거머쥐었습니다. 검찰 측에선 인사청문회를 거친 이원석 후보자가 검찰총장 임명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원석 후보자가 검찰총장에 취임한 후 검찰 수사도 속도를 낼 전망입니다. 자연스레 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도 진전을 보일 것입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이 대표를 둘러싼 다양한 의혹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보다 더 크고 방대한 사안들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장동
먼저 지난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이 있습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시절 성남판교대장도시개발사업을 100% 공영 개발 방식으로 추진해 환수액 5503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이익금을 화천대유에 몰아줬다는 의혹입니다.
백현동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도 있습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당시 한국식품연구원의 매각 부지를 매입한 민간사업자에게 임대주택 비율을 줄이는 등 용도변경을 해줘 수천억원대 분양이익을 챙기도록 했다는 의혹입니다. 일각에서 ‘제2의 대장동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의혹은 감사원 감사 결과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면서 진행됐습니다.
15개동 1223가구 규모인 백현동 아파트 개발사업은 2015년 2월 부동산개발회사인 아시아디벨로퍼 등에 매각된 뒤 자연녹지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되면서 진행됐습니다. 당초 전체 가구가 민간임대로 계획됐는데, 2015년 11월 민간임대가 123가구(10%)로 줄었고, 분양주택이 1110가구(90%)로 대폭 늘어 특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국민의힘 측은 “2006년 성남시장 선거 당시 이재명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이던 김인섭씨가 2015년 1월 아시아디벨로퍼로 영입된 뒤 급속히 사업이 진척됐다”며 “김 씨는 용도변경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고 70억원을 챙겼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남시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따른 협조 요청으로 용도 변경이 이뤄졌고 R&D센터 부지 등 공공 기여를 고려해 민간임대에서 분양주택으로 전환됐다는 것이죠.
위례신도시
부동산 개발 특혜 의혹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위례신도시도 있죠. 위례신도시 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50억 원대 자본금 규모의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인 '푸른위례프로젝트'가 설립됐습니다. 여기에 성남도시공사와 AMC 등이 참여했죠. 여기서 화천대유가 대장동 사업에서 수백억 원대 규모의 배당금을 챙긴 것처럼 위례자산관리도 총수익의 상당부분에 해당하는 배당금을 챙겼다는 의혹입니다.
검찰은 지난달 말 부패방지법 위반, 특가법상 뇌물 등의 혐의로 위례신도시 A2-8블록 개발사업을 시공한 호반건설을 비롯해 위례자산관리, 분양대행업체 및 관련자 주거지 등 20여 곳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성남FC 후원금
성남FC 후원금 의혹은 현재 경찰에서 수사 중입니다. 이 의혹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때인 2014∼2017년 두산건설·네이버·농협·분당차병원·현대백화점·알파돔시티 등 관내 6개 기업으로부터 160억여 원의 후원금을 유치하고 건축 인허가와 토지용도 변경 등의 편의를 제공했다는 내용입니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성남FC와 두산건설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는 상황입니다.
쌍방울
최근 검찰이 쌍방울 그룹 본사와 계열사 10여 곳에 대해 대규모 압수수색을 벌였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쌍방울에 대한 압수수색이 여러 차례 이뤄졌습니다. 쌍방울 그룹의 수상한 자금 흐름과 이재명 의원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된 연결 고리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이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인 2018년, 경기도가 민간단체 아태평화교류협회와 대북 교류 행사를 주최했을 당시 행사 비용 8억원을 쌍방울이 부담했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당시 행사를 총괄했던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킨텍스도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방탄재명단’
위와 같이 이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민주당 입장에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죠.
민주당이 지난달 말 당헌을 개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민주당 당헌 80조는 ‘사무총장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하고 각급윤리심판원에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헌 제80조 개정안은 부정부패와 관련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하되 정치보복으로 인정되는 경우 당무위 의결을 거쳐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당헌 개정을 두고 ‘방탄용 개정’, ‘이재명 사당화’라는 내부 논란이 있어 한 차례 부결되기도 했지만 결국 재투표 끝에 의결됐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를 앞두고 검찰이 지난 8일 이 대표를 기소하자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역대 어느 정권도 말꼬투리를 잡아 대선 경쟁자를, 그것도 제1야당 대표를 법정에 세운 적은 없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추석 연휴를 노리고 짜인 각본대로 이뤄진 야당탄압 기소 쇼이며 부당한 정치 탄압”이라고 말했습니다.
원내 다수당인 민주당은 169석을 무기로 반격할 채비에 나섰습니다. 당론으로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 여당을 압박하는 방안 등이 거론됩니다. 또 윤 대통령 집무실과 사저 관련 사적 수주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준비하는 진상 규명단을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민주당 입장에선 이 대표가 기소 후 재판을 통해 법원의 유죄 판단을 받을 경우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차기 대선 구도에도 차질이 불가피합니다. 당의 명운을 걸고 이 대표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구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취임한 뒤 대대적인 검찰 물갈이 인사가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돌아온 특수부’ 검사들이 수사팀을 꾸려 대장동, 성남FC, 쌍방울 등 주요 의혹들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수사에 고삐를 죄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특수통인 이원석 후보자가 검찰총장 취임을 앞두고 있죠.
이 대표를 당 대표로 앞세운 민주당과 일전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혹자는 이번 대결을 ‘정치탄압’으로 다른 이들은 이를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으로 볼 것입니다. 판단은 개개인의 자유이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검찰과 정치권 모두 이 사안에 함몰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차가운 머리로, 법리와 증거로 범죄 의혹에 대한 사실 여부를 가려내야 할 것입니다. 또 수사받는 입장에서도 합리적인 대응을 통해 억울하고 불합리한 부분을 걷어내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회 곳곳에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과 개선 의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입니다. 고금리, 경기침체,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 강달러, 자영업자 몰락, 취업난, 사회약자 보호, 재난시스템 정비… 최근 일어난 여러 사안이 검찰과 정치권의 첨예한 갈등 이슈에 묻혀버리지 않길 바랍니다. 한정된 사회적 에너지가 이런 이슈에 모두 소진되어 버린다면 결국 사회에는 손실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양측 모두 더 성숙하고 냉철한 자세로 임하길 바라봅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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