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컬렉터들을 빨아들인 세계적 미술 장터 '프리즈서울2022'가 지난 주 끝났다. 홍콩 재벌 3세이자 세계 미술계에 '슈퍼 컬렉터'로 이름 난 에이드리안 청(43) 뉴월드그룹 부회장도 한국을 그 중 한 명. 프리즈서울에서 그는 소장품 리스트에 단 한 점의 그림을 추가했다. 영국 태생의 흑인 화가이자 세계 미술계에 떠오르는 신예, 쟈데 파도주티미(29)의 신작이다.
청 부회장은 일본 타카 이시 갤러리가 출품한 'Resonate rain, rain down, down on me, and you, and ourselves(2022)'을 구매했다. 추정가는 10억원대 후반. 이 작품은 가로 400㎝, 세로 250㎝에 달하는 파도주티미의 대작이다.
아직 한국 컬렉터들에게 낯선 파도주티미는 이미 글로벌 화랑계에 수년째 오르내리고 있는 이름이다. 석사를 졸업한 지 4년, 20대 후반에 그의 그림은 이미 경매 시장에서 약 20억원에 안팎에 낙찰되는 '블루칩'이 됐다.
93년생 흑인 여성 화가의 그림은 이미 영국 테이트 미술관의 영구 소장작이 됐다. 역대 최연소다. 올해 그는 세계 최대 갤러리인 가고시안 갤러리의 소속 작가가 됐다. 수퍼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셈이다. 그의 그림들은 경매 시장에선 10억원대, 최고가 20억원에 낙찰되기도 한다. 추정가의 15배 이상에 달하는 가격. 대체 누구길래 컬렉터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그는 어릴 때부터 색채에 대한 예민하게 반응했다. 동네에 있던 노란색 2층 버스엔 자주 탔는데, 절대 빨간색 버스에 타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고. 그 이유는 "그냥 노란색이 무언가 추상적인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0대 때다. 내면에서 요동치는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림을 택했다.
지금도 그는 캔버스 앞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고, 음악을 들으며 뛰어다니다 캔버스 앞으로 다가가 떠오르는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주로 영감이 떠오르는 밤에 작업하는 그는 그림의 제목들도 문득 떠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서 런던 남부 산업단지에 자리한 그의 스튜디오는 매우 광활하다. 어린 시절부터 모아온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하다.
"10대 시절은 다소 우울했던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을 보며 '너의 그런 감정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감정의 깊이를 탐구하고, 그런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죠."
그는 일본 만화의 그림과 사운드트랙이 강렬한 감정들을 이끌어내는 것에 매료됐다. 그 속에 숨은 철학적이고 깊은 스토리라인에도 매력을 느꼈다. '에어'라는 작품을 봤을 땐 일주일 내내 흐느낀 적도 있었다고.
지금도 애니메이션은 그의 그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다. 일본어를 배우고, 1년에 여러 번 일본을 갔다. 교토에서 교환학생 생활도 했다. 영국에서 자랐지만 일본 만화에 빠졌고, 집 밖에선 영국인이지만 집에서는 나이지리아인으로 살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엔 광적인 붓놀림과 색상의 충돌, 그것으로 오는 황홀함이 뒤섞여 있다.
"내 그림이 흑인의 그림같지 않다는 말들을 합니다. 내 정체성이 작품에 드러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누군가를 하나의 범주에 가두는 것은 원하지 않아요."
그는 대학 시절 "압박감과 불안감을 많이 느꼈다. 예술가의 의미와 나는 누구인 지에 고민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의 세계를 완성한 건 석사 학위를 받은 이후다. 자신의 일기장에 썼던 순간 순간의 감정과 메모들, 자연과 인간에 대한 탐구에서 온 생각들을 자신만의 색채로 그려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졸업 후 2년 만에 3개의 갤러리가 그의 작품을 찜했다. 런던 피피 훌즈워스갤러리는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개인전을 열고, 페어에 참가했다. 올해는 쾰른 갤러리 기셀라 카피타인, 도쿄 타카 이시 갤러리, 가고시안 갤러리와도 계약했다.
"나에겐 그림이 치료이고, 구세주입니다. 왜 안정제와 같은 약을 먹으면서까지 남들과 똑같은 기준에서 치료 받아야 하는 지 모르겠어요."
파도주티미는 자신의 폭발하는 감정들을 담아내기에 캔버스가 너무 작다고도 한다. 그래서 주로 폭 2~4m에 달하는 대형 작품들을 온몸으로 빠르게 그려낸다. 유명 갤러리들이 그를 대가들과 함께 전속 작가 리스트에 빠르게 올린 것도 그런 이유가 크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여도 작품이 나오는 속도가 너무 느리면 컬렉터들의 수요를 맞출 수가 없어서다.
컬렉터들만이 아니다. 오랜만에 등장한 순수 회화의 샛별에 세계의 미술관들도 열광하고 있다. 테이트 미술관을 포함해 워싱턴D.C 허쉬혼뮤지엄, 볼티모어박물관, LA카운티뮤지엄 등이 소장했다.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선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해 리버풀비엔날레에 이어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김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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