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얘기다. ‘PXG’란 큼지막한 로고가 붙은 골프 모자와 옷이 처음 나왔을 때, 국내 골프업계는 물론 패션업계 사람들도 경악했다. 통상 3만~4만원 정도인 골프 모자에 11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달렸기 때문이다.
평상복으로도 입는 폴로(PK) 셔츠엔 40만원짜리 태그가 붙었다. 모두 “루이비통도 아닌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종) 브랜드를 사려고 그 값을 낼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비웃었다. 그럴 만도 했다. PXG는 2014년 미국에서 태어난 신생 브랜드인 데다 그때까지 패션사업을 해본 적 없는 국내 기업이 어패럴 부문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빗나갔다. PXG는 프리미엄 골프 시장을 연 개척자가 되면서 국내 진출 5년여 만에 연 매출 1590억원짜리 브랜드로 성장했다.
PXG 성공 스토리를 쓴 주인공인 신재호 카네·로저나인 회장(62)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독일 명품 패션 브랜드 ‘휴고 보스’와 손잡고 내년 봄·여름 시즌부터 ‘휴고 보스 골프’를 내놓기로 한 것.
로저나인 관계자는 12일 “휴고 보스 본사가 만든 골프의류를 단순히 판매하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디자인과 생산까지 도맡아 한 뒤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 판매하는 방식”이라며 “국내 기업이 명품 브랜드 골프 옷을 직접 생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휴고 보스가 로저나인에 골프웨어를 맡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한국 등 아시아 골프의류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데이터 회사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골프웨어 시장은 5조6850억원 규모로, 1년 전(5조1250억원)보다 10.9% 확대됐다.
성장을 위해선 아시아 시장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데, 직접 뛰어드는 것보다 한국 등 아시아인의 체형과 트렌드를 잘 아는 현지 업체에 맡기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두 번째는 PXG를 통해 검증된 로저나인의 ‘실력’이다. 신생 골프 브랜드를 단숨에 ‘톱 골프 의류’로 키워내서다. 국내에서 PXG 사업은 두 갈래로 진행하고 있다. PXG 골프클럽은 카네를 통해 수입·판매한다.
옷은 로저나인이란 회사에서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모두 맡는다. PXG에는 브랜드 사용료만 낸다. PXG 의류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지난해부터 본업인 클럽 판매(카네)보다 의류(로저나인) 매출이 앞서기 시작했다.
현재 로저나인 매출은 카네의 두 배에 이른다. 지난해 1590억원이던 두 회사 합산 매출은 올해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PXG 의류 성공은 신 회장의 프리미엄 전략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내부 반대까지 무릅쓰고 ‘고가 정책’을 펼친 이유에 대해 “국내 시장에는 젊은 이미지의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그 자리를 PXG가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했다. 다른 브랜드들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좇을 때 홀로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를 추구했다는 의미다.
그는 “신생 브랜드가 높은 가격을 책정하려면 그만한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며 “그래서 PXG의 생산 원가는 다른 브랜드보다 4~5배 높다”고 했다. 신 회장은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PXG 브랜드를 키운 것처럼 휴고 보스 골프브랜드도 만들 것”이라며 “보스라는 브랜드 명성에 걸맞은 옷을 내놓겠다”고 강조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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