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우려로 글로벌 투자업계가 혹한기를 맞았다. 그러나 글로벌 대기업들과 벤처투자업계는 오히려 ‘알짜배기’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풍부한 유동성에 우후죽순 생겨난 신생 기업 중 위기 때 진가를 드러내는 곳을 싼값에 사겠다는 전략이다.
○빅테크·바이오 M&A 활발
세계 최대 e커머스 기업 아마존은 지난 9일(현지시간) 벨기에 물류 자동화 업체 클루스터먼스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아마존은 빅테크 중에서도 M&A에 적극적인 기업이다. 지난달 로봇청소기 제조기업 아이로봇을 17억달러(약 2조3000억원)에 품었다. 올 들어서는 1차 의료기관 운영업체 원메디컬을 39억달러에 인수했으며 음식배달 서비스 업체 그럽허브 지분 2%를 취득할 수 있는 옵션을 확보했다.지난 5월에는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소프트웨어 기업 VM웨어를 610억달러(84조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올해 발표된 M&A 중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브로드컴은 2018년 소프트웨어 기업 CA테크놀로지(189억달러 규모), 2019년 시만텍 보안부서(107억달러) 등을 인수하며 소프트웨어 사업을 확장해왔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는 최근 적혈구 질환 치료제 제조업체 GBT를 54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 규모는 2조4000억달러(3300조원)다. 전년 동기보다 30% 감소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연간 시장 규모(4조달러)의 60% 수준이다.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는 최근 보고서에서 “다수 기업들은 현금 흐름이 좋으며 대차대조표가 양호하고, 딜을 위한 자본 조달도 어렵지 않은 상황”이라며 “강력한 M&A를 성공시키기 위한 기반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서술했다.
기업들은 M&A를 통해 경쟁사 및 부품·납품 업체를 인수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아마존의 아이로봇 인수는 가정용 로봇시장 진출을 넘어 로봇·스마트홈 생태계 구축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다. 미 정보기술(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아마존은 2012년 물류 로봇 기업 키바시스템즈를 인수한 후 로봇 사업을 공격적으로 키우고 있다”며 “아이로봇의 로봇청소기 ‘룸바’에 아마존 인공지능(AI) 음성인식 서비스 ‘알렉사’를 탑재하는 등 두 기업은 수 년간 협력해왔다”고 보도했다.
○美 정부 ‘반독점 드라이브’ 제동
벤처캐피털(VC)업계는 ‘옥석 가리기’ 작업에 한창이다. 글로벌 벤처투자 정보기업 CB인사이트의 ‘2분기 벤처 현황 리포트’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글로벌 벤처 펀딩 금액은 2501억달러로 전년(6259억달러)의 40%다.그러나 지역으로 세분화하면 유럽과 캐나다, 아프리카 등은 상반기 펀딩 금액이 전년 연간 금액의 절반을 넘었다. 아프리카의 상반기 벤처 펀딩 규모는 17억달러로 지난해 연간 기록(24억달러)의 70% 이상이다. CB인사이트는 아프리카가 올해 신기록을 쓸 것으로 예측했다. 글로벌 VC 세콰이어캐피털은 지난 6월 인도와 동남아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28억5000만달러 규모 펀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강력한 반독점 드라이브로 주요 기업들의 M&A에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는 점은 변수다. 미 반독점 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최근 1년간 메타(옛 페이스북)의 가상현실 기업 ‘위딘’ 인수 건, 록히드마틴의 로켓 엔진 제조기업 ‘에어로젯 로켓다인’ 인수, 엔비디아의 반도체 설계 기업 ‘ARM’ 인수 건에 반대하거나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메타는 최근 위딘 인수를 포기했다.
지난해 ‘아마존 저격수’로 불리는 리나 칸 교수가 FTC 위원장에 임명되며 빅테크와의 관계는 더 악화되고 있다. 아마존과 메타는 지난해 FTC가 반독점 조사에 나서자 칸 위원장을 배제해 달라며 기피 신청을 했다. 이전부터 빅테크 기업을 비판해온 칸 위원장이 공정성을 잃었다는 이유다. 5인 체제인 FTC에서 최근 민주당이 3대 2로 수적 우위를 점하면서 FTC의 반독점 행보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관련뉴스